질문하는 아이가 살아남는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우리는 지금,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문명의 전환기에 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화재는 이제 세계 곳곳의 일상이 됐다. 이제 이런 현상을 '이변'이라 부르지 않는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 이념과 종교적 갈등 등은 지구 곳곳을 참혹한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문명의 절정과 동시에, 그 붕괴의 전조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 'AI(인공지능)'가 있다. AI는 갑자기 등장한 것 같지만, 이미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삶을 재편하고 있다. AI는 지식의 습득과 문제 해결뿐 아니라,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 활동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능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술 발전은 선택이 아닌 불가피성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9세기 초, 기계화에 반대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졌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문명은 파도처럼 도래한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 와 있다. AI는 이미 교육, 의료, 문화, 예술, 산업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AI가 주는 편리함과 생산성은 분명하지만,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가 어려운 특성 때문에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도 조성하고 있다. 세계적 AI 연구자들은 "AI는 문명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라 경고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기술을 외면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제공한 데이터를 학습해 답한다. AI의 답은 인간이 던지는 질문의 질에 따라 달라진다. 질문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인간 고유의 경쟁력이다. 지금까지 학습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 '얼마나 빨리 푸는가?'였다. 하지만 암기와 속도는 이제 AI가 훨씬 더 잘한다. 챗GPT나 제미나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정답을 제시한다. 이제 인간에게는 전혀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맥락을 읽는 힘, 감성과 윤리적 통찰에 근거한 질문하는 능력이다. 좋은 질문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 책을 읽고, 세상을 경험하며, 감정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때 질문이 만들어진다. 풍부한 정서, 독창적인 상상력, 공감과 감탄, 소통과 협력, 연민과 배려 같은 비이성적 자질이 오히려 미래 사회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방학이 와도 빡빡한 학원 일정 때문에 아이들은 미래의 변화를 배우고 준비할 겨를이 없다. 지금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 힘'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책과 음악,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 자연을 체험하며 낯선 세계와 마주하게 해야 한다. 구름에 닿을 것 같은 미루나무가 있는 강둑을 걸으며 노을에 젖어보거나, 깊은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며 대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 그 순간에 질문은 태어난다. 엉뚱한 질문을 자주, 많이 던져봐야 한다. 정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 가장 창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음악회, 고궁 답사, 도서관, 여행, 이런 학교 밖 경험이 아이들 마음속에 좋은 질문의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은 창의성의 불씨이자, 생각의 열쇠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는 "질문은 해답보다 오래 산다."라고 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빠르고 정확한 답을 제공하겠지만, 인간은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 학창 시절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기에 '나'라는 존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질문이 바로 철학적 여정의 시작이다. 우리는 AI보다 똑똑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위해 살아간다. AI가 만든 세상은 효율적이지만, 인간은 여전히 느리고 복잡한 존재다. 그 복잡함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사랑하고, 성장한다. 그 느린 인간다움이 AI 시대엔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된다. 앞으로 기술의 파도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물결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을 삶의 도구로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름방학이다. 온 가족이 주말 자연 체험 행사에 참여해 보고, 동네 도서관을 찾아가는 등,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부모님들이 먼저 질문 잘하는 아이가 세상을 바꾸고,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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