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작가
내 첫 번째 글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싶다. 그래서 힘이 들어가지 않을 만한 소재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역시 가족만한 게 없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라'는 뜻으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한글 이름을 짓고 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철학관도 점집도 아닌 한글학회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이런 뜻의 이름을 지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신 우리 부모님도 참 특별하다. 하지만 외동딸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온실 속 화초 대신 들판 위 잡초로 자랐다. 이것은 아이라면 응당 건강하게 흙 속에서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철학이었고, 공부는 못해도 예의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오랜 신념이기도 하셨다. 다행히 부모님 덕분에 나는 건강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90년대, 한 달 월급이 몇십 만원에 불과하던 시절 어머니는 월급 절반에 달하는 몬테소리 전집 세트를 사주셨다. 다행히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고, 전집에 들인 돈이 아깝지 않게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불 빨래를 갤 때면 꼭 어린 나를 불러 바짝 마른 이불에 코를 박게 하시고는 "이게 바로 해님 냄새야. 따뜻한 냄새가 나지"라고 말씀하셨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해님의 냄새를 그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나는 특별한 감성을 가진, 무려 5500℃에 달하는 태양의 냄새를 코끝으로 맡아본 유일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회사 워크숍에서 늘 삼행시로 상품을 타오셨고, 나는 중학교 때부터 백일장 상장만 일 년에 열 개를 타왔다. 내가 글로 먹고 사는 것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부심 가득한 능력이다. 물론 몬테소리 전집도, 워크숍 상품도 또 내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상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모두 3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근속한 아버지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늘 감사하다.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는 사람으로 자라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매개체는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글이다. 누군가를 감탄하게 할 만한 글을 쓰는 것, 누군가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수많은 글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가 아이를 낳게 되면 같이 바짝 마른 이불에 코를 박고 '이게 바로 해님 냄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어른이 되어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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