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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헤밍웨이의 아들

2025-09-08 06:30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가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차남 패트릭 헤밍웨이(1928~2025)가 지난 2일 타계했다. 향년 97세.


이 아들이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1927년 유부남이었던 헤밍웨이가 부유한 가톨릭이며 파리특파원이었던 폴린 파이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 이듬해 패트릭을 낳았다. 1940년 그가 12살 때 부모는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그해 스페인내전 때 만난 소설가면서 기자인 마사 겔혼과, 1946년에는 전쟁특파원이었던 매리 웰시와 결혼하였다.


패트릭은 부모가 이혼하기 전 부모와 자주 여행을 갔다. 그는 이때 아버지가 쓴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란 논픽션에 크게 매료되었다. 탄자니아에서 돌진하는 코뿔소를 쏘아죽인 스릴과 공포가 짜릿한 기록이었다.


패트릭은 코끼리, 사자, 표범 등이 우글거리는 세렌게티국립공원에서 킬리만자로국립공원까지를 탐험하는 사파리 회사를 세웠다. 아버지가 쿠바에서 계모 웰시와 함께 그리로 와서 같이 10주간 사파리를 즐겼다. 이때 헤밍웨이는 픽션과 회고록을 혼합한 한 작품을 썼지만 탈고를 못했다.


그는 두 번이나 비행기 사고로 머리만 크게 다쳐 돌아갔다. 아버지의 이 미완성 작품을 완성한 것이 패트릭이다. 그는 이 원정에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의도를 알았고 서문을 붙여 1999년에 세상에 내놓았다. 2022년엔 30년간 부자간에 나눴던 120통의 편지를 모아 '아버님께'라는 서간집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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