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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낙하산을 늦게 펼친 노인

2025-09-15 06:00
이은미 변호사

이은미 변호사

70대 남자 피고인 A는 70대인 아내를 폭행해서 상해를 입혔다는 내용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다. 사건 기록에는 A의 아내가 상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진단서가 제출되어 있었고, A의 아들과 딸이 아버지는 예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어머니와 자식들을 폭행했다고 진술한 내용이 있었다. 아내의 신고로 경찰이 왔으며 경찰이 왔을 때 집안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A는 나에게 아내의 상해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아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딸과 자신은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서, 아들과 딸의 진술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했다. A는 가족 3인의 일관되고 동일한 주장에 대해서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내가 A에게 전화를 할 때 그의 전화연결음 소리는 그가 직접 연주한 거문고 소리였다. 그는 평소 서예를 즐기며 고서를 읽는 취미를 가졌다. 나를 비롯하여 남들에게는 깍듯했고 드라마에 나오는 선비처럼 말했다. 특히 아내와의 이혼소송에 대해서는 "부부란 좋다고 살고 싫다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이 맺어준 것으로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끊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일평생 가족을 때려본 적이 없다고 했고, 아내와의 재결합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는 현실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이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진정성 있는 사과 외에 별로 없어 보였다. A의 아내는 가정폭력 피해자로 쉼터에 머물고 있었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혼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A가 반성하지 않으므로 재결합하거나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A에게는 재산이 많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이혼하고 재산을 분할하면 아내 역시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 곳도 새로 구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사야 하고. 그런데도 노년에 쉼터에 머물며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을 보면 A의 아내는 A가 달라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증거들은 A가 아내를 때린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70대 중반이 넘은 그가 홀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정말 때리신 게 맞다면, 지금 하시는 방식으로는 절대 아내분과 재결합을 할 수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인정하고 사과를 하셔야 가족들이 진정성을 느끼실 것이고, 가족들이 보았을 때, 평소 선생님의 성품상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인정해야 가족들은 선생님께서 진짜로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재결합하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 낫다면서, 무죄 주장과는 별개로 아내에게 사과는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것을 잘한 것만은 아니며, 인생 전체를 통틀어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사과를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로 하였고, 그의 아내는 답을 하지 않았다.


"변호사님, 아내와 딸을 때린 사실을 절대 인정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무죄를 받지 못하더라도 동티는 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아내와 재결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무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아내와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으며 결국 이혼했다. 이제 그는 거문고를 타고 고전을 읽고 난을 쳐도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낙하산과 같다. 펼쳐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늦게 펴면 소용이 없다. 반만 펼치는 것은 안 펼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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