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목 시인
손을 겹쳐 잡아야 이루어지는 소망 같은 게 있어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곳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지옥보다 천국을 더욱 먼저 발견할 것이다 오래된 집 앞 산책로 가로등의 개수보다도 먼저
너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천국에 당도하지 못한 천사의 죄를 훔치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네가 훔쳐 오는 죄를 본다 그리고 새 차원의 시차를 목격하는 오늘의 오후
그 천사의 모든 잘못이 우리의 것인 양
-권누리 "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하겠지"
내 죄를 돌려줘! 자신의 죄를 잃어버린 천사가 오후의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연인들을 붙들며 제발 내 죄를! 죄의 무게를 잃어버린 부력으로 서서히 천국으로 떠오르는 그를 우리는 모른 체한다. 사랑한 만큼 미안한 지상에서 잘못은 결국 서로인 것. 미안한 만큼 안아야 하는 세상에서 용서는 이별인 것. 우리는 서로의 죄를 수은처럼 마시며 밤의 가장 깊은 곳까지 추락할 것이다. 천국은 이미 모든 소망이 이루어진 곳. 그래서 소망이 없는 곳. 천국은 손을 겹쳐 잡을 이유가 없는 곳.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우리는 그저 가로등 아래를 걷고 싶다. 가로등 개수보다도 많은 소망을 켜서 저 멀리에 있는 천국을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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