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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오늘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2025-09-22 06:00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비정규직의 끝판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공익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는 로펌에 근무하는 덕분이다. 정신없이 일하면서 언제 쉬냐는 질문을 꽤 받는데, 놀랍게도 충분히 쉬고 있다. 이처럼 업무와 힐링이 양립가능한 이유는 국내외 출장 중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성당 순례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과 계속되는 회의로 출장은 늘 힘들다. 더욱이 시차까지 상당한 외국 출장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서면 낯설다는 느낌을 받기도 전에 쓰러져 잠들게 된다. 간혹 짬을 내서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관광지까지 이동 거리와 시간을 고려하면 대부분 호텔 방 침대가 더 매력적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던 출장이 즐거워지기 시작한 것은 연초에 우연히 '하루쯤 성당여행'이라는 책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아름답고 오래된 우리 성당을 소개하는데, 처음에는 호기심에 출장지 근처의 성당들을 하나씩 방문하게 되었다. 출장지에서 업무 시작 전후를 이용하여 숙소에서 멀지 않은 성당들을 찾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조용한 예배당 안에서 누리는 혼자만의 사색이 좋았다. 주변 산책길에서 만나는 꽃들이 전해주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좋았다. 도대체 성당 안의 꽃들은 얼마나 정성껏 가꾸길래 꽃집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일까. 좋은 것은 중독성이 있다. 국내에서 시작한 성당 투어는 낯선 외국 도시에서도 계속되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바로 기도의 대상이 넓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기도했었다. 건강하게 해달라. 원하는 바를 꼭 이루게 해달라. 그러다가 기도의 대상이 확 넓어진 것은 군 복무 중인 막내의 부대 방문이 계기가 되었다. 분단국가에 태어난 운명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시절을 휴전선 근처 산골짜기에서 보내고 있는 아들 같은 장병들을 보고 나니 고맙고 마음이 짠했다.


그날 저녁 숙소인 화천 읍내에 있는 성당을 찾았다. 대한민국 모든 국군장병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기도하였다. 신께서 그들이 바치는 청춘만큼의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머리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기부로 존경받는 선배께서 하신 "기부는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기도 역시 같다고 생각된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인사하시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사무실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 단골 식당 이모님들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한다. 스카우트 행사를 위해 지방을 방문할 때는 참가한 모든 청소년과 이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해외 출장에서 방문한 성당에서는 낯선 땅, 어려운 환경에서 국민경제를 위해 열정을 불사르는 삼성 주재원들과 세계한인무역경제인협회(월드옥타) 회원들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 부자가 되었더니 무시 또는 경멸의 대상이던 국내외 정치인들을 위해서도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대상이 넓어지니 마음이 맞지 않아 미워하던 사람들마저 떠올린다. 아직까지는 서운함이 완전히 희석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계획이다.


성경 말씀처럼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다 보니 항상 기쁘고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할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한 사람이 "오늘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너무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서 기도할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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