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은 곧 폐쇄, 지역 생존권 말살”…주민 500여명 거리로
25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만촌마트 앞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이전 반대 주민결의대회'에서 주민들이 결의문을 낭독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준오기자
25일 오후 2시,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중심가인 만촌마트 앞 도로는 평소와 다른 중압감이 감돌았다.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식당과 철물점 유리창에는 '제련소 이전 반대' 문구가 적힌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붉은 머리띠를 동여맨 주민 500여 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집회를 시작하자, 적막했던 산골 마을은 이내 긴장 섞인 구호 소리로 가득 찼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제련소 이전을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닌 '생존의 붕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석포면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60대 A씨는 앞치마를 두른 채 집회 대열 끝자락을 지켰다. 점심 장사를 서둘러 마치고 나왔다는 익명을 요구한 그는 "손님 열 명 중 여덟 명이 제련소 직원이거나 협력업체 사람들인데, 공장이 옮겨가면 우리는 여기서 누굴 상대로 밥을 팔겠느냐"며 텅 빈 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민들은 경북도가 운영 중인 '제련소 이전 타당성 검토 TF'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불안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1970년 가동을 시작한 영풍석포제련소는 반세기 동안 봉화 석포와 인접한 강원 태백의 경제적 젖줄 역할을 해왔다. 석포면 인구 2천여 명 중 상당수가 제련소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전 논의가 사실상 지역 소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포면 현안대책위원회와 주민생존권사수봉화군협의회, 태백시현안대책위원회는 결의문을 통해 "정부와 지자체가 환경단체의 논리에만 매몰되어 지역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련소가 철수할 경우 인구 유출은 물론 학교와 병원 등 기초 생활 인프라까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5일 봉화군 석포면 만촌마트 앞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이전 반대 주민결의대회'에 참석한 주민들이 붉은 머리띠와 피켓을 들고 '생존권 사수'를 외치고 있다. 황준오기자
제련소 측은 매년 1천억 원 규모의 환경 개선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는 입장이다. 무방류 시스템(ZLD)과 저황산화 설비 등 오염 물질 배출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를 완료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경단체와 일부 학계는 낙동강 수질 오염 문제를 들어 이전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오후 4시를 넘기며 집회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주민들은 "선대책 후논의"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대열에서 만난 한 40대 근로자는 "여기서 나고 자라 아이를 키우는 우리에게 이전은 곧 직장을 잃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며 짧게 말을 맺고 다시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서는 환경 보전과 지역 생존 문제가 맞서는 양상이 드러났다. 정부와 경북도의 대응 방향에 따라 제련소를 둘러싼 지역 사회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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