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베어스’ 자파르 파나히 감독 (2022·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 '노 베어스' 스틸컷.
지난 9월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귀빈은 아마도 자파르 파나히 감독일 것이다. 징역형, 출국 금지, 영화제작 금지 등을 당했던 이란 감독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안겼다. 그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파나히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 모두에서 최고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란 영예를 얻었다.
'노 베어스'는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택시'(2015)를 비롯한 전작에서 보듯 감독이 영화 전면에 등장한다. 출국 금지로 촬영 현장(튀르키에)에 갈 수 없는 감독이 국경 근처에서 원격으로 촬영을 지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촬영 현장과 감독이 머무는 국경 마을,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온다.
영화 속 영화가 있고, 영화 밖 영화가 있다. 또 두 이야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있다. 영화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정교하게 계산된 내용 속에서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묵직하다. 감독이 원격으로 지시하던 영화 현장에서 여배우가 항변하다. 이 모든 게 가짜가 아니냐고. 우리에게 해피엔딩은 없다고 말한다.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영화 밖, 감독이 머물고 있는 국경 마을에는 미신과 전통 속에서 억압받는 연인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정혼자가 따로 있기에,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던 연인들의 꿈은 무참히 깨어진다. 비극 속에서 감독은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궁금해지는 이 영화는 무엇보다 제목이 메시지를 또렷하게 말해준다. '노 베어스(No Bears)', 곰(두려움의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국경 마을의 사람들은 곰이 있다는 소문에 국경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감독이 길에서 만난 사내는 "겁주려고 꾸며낸 말"이라 한다. 이어서 "두려움을 만들면 권력을 휘두르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신과 전통이 사람을 얽어매는 시골 마을 이야기지만, 자신의 조국 이란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0년 감독은 6년 징역형, 20년간 출국 금지와 영화제작 금지라는 형을 받았다. '노 베어스'도 구금 상태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슬픔 속에서 다시는 감독의 영화를 보지 못할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많은 이들의 구명 운동에 힘입어 단식 도중 풀려난 그는, 투옥 경험을 소재로 '그저 사고였을 뿐'을 만들어 칸 황금종려상의 쾌거를 이룬다. 물론 당국의 허락은 받지 못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에서 "우리가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인물들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은 오지 않는 '고도' 즉, 고국의 자유를 기다리고 있다. 모국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될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다. 그토록 힘겨운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영화를 만드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영화는 자신에게 삶 자체라고 말했다.
영화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이에게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를 권한다. 현실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보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변화를 꿈꾸게 한다.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어쩌면, 이런 영화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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