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소기업의 생존 방식 'M&A'<2>
200년 전통의 사카쿠라(주조장)인 '묘코주조'를 인수한 택트홀딩스 매니저들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 사이에서 '제3자 승계형 M&A(인수합병)'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창업 세대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가 맞물리며, 기업을 가족에게 물려주기보다 외부에 매각하는 흐름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정부의 정책 지원과 제도 정비도 이 같은 움직임을 뒷받침하며 '폐업 대신 매각'이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일본 내 M&A 거래 건수와 금액은 모두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단순한 승계 목적을 넘어, 지배구조 개혁과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한 카브아웃(비핵심 부문 매각)도 활발하다. 사모펀드(PE)와 투자회사가 중소기업 인수에 뛰어들며, 지방 제조·식품기업의 '롤업(동종 통합)'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영권을 넘기는 것을 넘어 일본 산업 전반의 재편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년 전통의 사카쿠라(주조장)인 '묘코주조'의 인수합병(M&A) 스토리다.
◆매물로 나온 200년 장수 기업
묘코주조 옛 본사 전경. <일본M&A센터 제공>
묘코주조 옛 본사 전경.<일본M&A센터 제공>
묘코주조 제품 라인업.<일본M&A센터 제공>
묘코주조 전통주 로고.<일본M&A센터 제공>
묘코주조는 일본 니가타현 조에쓰시 미나미혼마치에 위치한 주조회사다. 1815년 '신케이 주조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19세기 말에는 술을 만들기 위한 쌀 소비량이 4천석을 넘어설 정도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주조장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어 1956년 법인화 등 일본 근대사의 희노애락을 함께 한 묘코주조는 현 도조(杜氏·양조장 기술 책임자)인 히라타 모리씨가 1989년 취임 후 대표 유명 상표인 '묘수산'을 필두로,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창의성 높은 일본술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2003년 9월에는 해외 시장에 일본 술을 수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음주문화 변화로 전체 주류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일부 술 소비량은 감소중이다. 묘코주조의 경영상황도 나빠지면서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됐고, 이로 인해 모기업인 오이즈미그룹은 구조개편 일환으로 사카쿠라를 매물로 내놓았다.
녹록치 않은 시장상황으로 인해 묘코주조를 인수하겠다는 기업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 자체의 경영적 문제가 겹치면서 인수의사를 밝히던 기업들도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200년 업력의 묘코주조는 위기를 맞게 된다.
택트홀딩스 담당자들이 영남일보 취재진에게 묘코주조 인수합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택트홀딩스 류타로 슈지(왼쪽)와 유지 마쓰모토 매니저(가운데)가 묘코주조 인수합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홍석천 기자
◆컨설팅 스타트업이 주조회사를 인수한 이유는
위기에 처한 200년 장수기업을 인수하겠다고 손을 뻗은 곳은 의외로 창립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다.
2024년 12월 묘코주조를 오이즈미그룹에게서 발행주식 전부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회사로 편입한 곳은 바로 '택트 홀딩스'(TACT HOLDINGS)다. 2022년 미용클리닉 운영과 의료기기, 의료사업 컨설팅을 주력 분야로 출범한 택트 홀딩스는 인수 당시 매출 4억6천만엔, 영업이익 2억5천만엔을 수준의 중소기업이었다. 헬스케어 중심의 의료 서비스 컨설팅 제공으로 출발한 택트 홀딩스는 이후 웰니스(Wellness) 개념과 결합된 헬스케어와 코스메틱으로 확대했으며, 마침내 먹는 건강관리를 표방하며 식품분야으로전문 분야를 넓히고 있다.
이에 대해 택트홀딩스의 M&A 담당 매니저인 류타로 슈지씨는 "토탈헬스케어를 진행하면서 외적인 미용클리닉과 함께 고민한 것이 '이너뷰티'였다"면서 "(택트홀딩스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마케팅, 기획력 등과 묘코주조의 장점이 합쳐지면 적지 않은 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전통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이들의 선택에 힘을 실었다. 택트 홀딩스 재무 담당 매니저인 유지 마쓰모토씨는 "일본 전통주시장이 전성기 때 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지만 이른바 브랜드력이 있는 술의 매출은 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전통주 시장의 양극화 상황에서 두 회사 간의 시너지를 통해 프리미엄 술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내부적인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류타로 슈지씨는 "성장 관점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클리닉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는 성장의 발판이자 리스크도 되는 것으로, 수익원 다원화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M&A센터에서 '묘코주조'의 인수 의향을 묻는 연락이 온 것이다.
◆수익보다는 '성장', 매출보다는 '시너지'
흔치 않은 '뷰티 컨설팅 회사의 전통주 제조 장수기업 인수'의 동기나 배경, 시너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류타로 슈지씨는 "앞서 말했듯이 사업 영역의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익이 나온다고 전혀 상관없는 업종에 진출할 생각은 없다"면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익성이 아니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와 사회적 기여, 즉 기업 존속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질적인 두 조직의 만남에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3년 차 기업의 200년 기업 인수''서비스업체의 제조업체 인수'라는 상황에서 세대 간, 업종 간 불협화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지 마쓰모토씨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전통주 업계의 역사는 길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제품을 추구한다는 것과 제조과정 하나 하나에 정성을 중요시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반면, 이런 과정은 어떻게 보면 비효율이 미덕으로 여기는 상황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효율성 하락은 영업익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시설투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기에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하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분위기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묘코주조 전 도조인 히라타 모리(왼쪽)씨가 후임 도조와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M&A센터 제공>
그래서 택트홀딩스는 인수 당시 근무방식 등 기존 직원들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실제, 이 회사의 도조인 히라타 모리씨의 경우 큰 변화없이 정년퇴직을 맞게 됐다. 또 퇴직 후에도 회사 고문으로 남아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후임 도조에 대한 인수인계도 무리없이 진행하고 있다. 내부 인사운영에 대해 철저히 내부 전통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경영적인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메뉴얼을 선보였다. 적극적인 시설투자를 통해 새로운 생산설비를 들여놓으면서 최신 주류시장 트렌드와 첨단기술에 대한 데이터화를 통한 소통에 집중하고 있다.
류타로 슈지씨는 "일본 주조업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세대차이라는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며 "젊은층이 다가가기 쉬운 브랜드가 돼야 한다. 이를 위애 니가타현지역 학생들에 대한 제조 체험과 같은 젊은층에 다가가려는 기회를 넓힐 것"이라고 했다.
컨설팅 전문가 집단인 모기업의 등장 이후 1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묘코주조의 매출은 전년대비 15% 가량 증가했다. 기존 방식의 작은 변화가 가져온 수치다.
유지 마쓰모토씨는 "일본 주조회사는 6월결산이다. 쌀을 생산하는 시기와 겹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인 택트홀딩스와 묘코주조의 시너지는 이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웃어 보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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