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올 한해 정치권 최악의 '국민 밉상'을 대라면 단연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꼽히지 않을까 싶다. '50년 공직생활'을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나이 76세 이 노인은 지난주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그대로 확정되면 아흔이 넘어야 감옥을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그를 동정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선고 때 형량을 더 높여야 한다는, 본인에겐 악몽 같은 주문이 적지 않다. "그 밉상 평생 감옥에 처박아 다시 안 보게 해달라"는 글엔 '좋아요' 수백 개가 달렸다. '공무원 신화' '직업이 총리'로 불리던 한 전 총리에 대한 이런 비난은 여와 야, 보수 진보도 가리지 않는 형국이다. 그의 옛 공직 동료조차 "내란 부두목에게 징역 15년 구형은 너무 봐준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 "그 어떤 덕수라도 되겠다"
올해 한 전 총리의 행적은 참 논란의 연속이었다. 4월4일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직 파면' 선고에 따라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선을 공정관리하고 새 정부 출범에 대비할 큰 책무를 안았다. 그러나 그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직을 내던지면서 직접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경기의 공정관리 책임자인 심판이 경기 중 느닷없이 선수로 뛰겠다며 유니폼을 바꿔 입은 꼴이었다.
그의 선언 다음 날 국민의힘에선 경선을 거쳐 김문수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그런데 경선판에 숟가락도 얹지 않았던 한 전 총리가 여기 대고 '후보 단일화' 주장을 들고나왔다. 놀랍게도 당의 친윤 지도부가 맞장구치며 김 후보를 눌러 앉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치열한 경선을 통해 뽑은 공식 후보를 입당조차 안 한 외부인과 맞바꾸는 황당한 시도에 비난이 빗발쳤으나 국민의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두 잠든 새벽 '한덕수 입당' '김문수 후보 취소' '한덕수로 후보 교체' 건을 전격 처리했다. 한 전 총리의 그 유명한 "이기기 위해서라면 김덕수 홍덕수 안덕수 나덕수, 그 어떤 덕수라도 되겠다"란 메시지가 이때 나왔다.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란 손나팔 외침과 함께 그를 '국민 밉상'에 떠올린 날이었다.
# "제가 헌재에서 위증했습니다"
대선 후보 등록 직전 국민의힘 전 당원 투표에서 후보 교체 안건이 부결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한 전 총리가 국민의힘 후보가 돼 대선을 완주했다면 그에게 15년을 구형한 내란재판이 어찌 진행되었을지 또한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전 총리가 왜 그렇게, 거의 목숨 걸다시피 하며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려 했는지는 재판과정을 보며 어느 정도 추리가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에 따른 윤석열 탄핵 심판 국면에서 상당한 거짓말을 해온 게 드러났다. 헌재에선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담화문 등을 전혀 받은 적 없다고 증언했으나 문건 2부를 받아 들고 대통령실을 나서는 모습이 CCTV에 생생히 잡혀 있었다. 이를 추궁하자 결국 그는 "제가 위증을 했습니다"라고 실토했다. 자신은 계엄을 극구 만류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자리에 있었던 국무위원 누구도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라고 부정했다.
오히려 비상계엄 선포의 적법 여부를 확인하고 어떻게든 정당성을 갖추려 애쓰는 모습은 확인이 됐다. CCTV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손가락으로 '4'와 '1'을 세어 보이며 회의 정족수가 차지 않았다는 뜻을 전하는 모습이 찍혔다. 이를 받은 한 전 총리는 바로 다른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을 독촉한 것으로 밝혀졌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당시 한덕수 총리가 전화를 걸어 빨리 와서 국무회의에 참석하라는 투의 말을 했다고 재판정에서 증언했다.
계엄 선포 후에도 대통령실 관계자가 문건에 서명이 필요하다고 하자, 한 전 총리는 반대하던 국무위원들에게 "서명하고 가라" "참석했다는 의미이니 서명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도 그는 석연찮은 이유로 시간을 끌다 정진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마지못한 듯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 '국민 밉상'이 된 '공무원 표상'
상황이 이러니 그가 1차 대통령 권한대행 때 내란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고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아 탄핵 심판을 무력화하려던 사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또 2차 대행 때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 등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를 자제하라는 게 헌법정신"이라던 제 말을 완벽하게 뒤집으며, 계엄 후 안가 비밀회동에 참석한 내란 동조 혐의자 이완규 당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전격 지명한 사실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될 듯하다.
비상계엄 진상을 숨기고 자신의 방조나 중요임무 종사를 영원히 감추려 출마를 시도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단 얘기다. 말만 '50년 공직자'에 '공무원들의 표상(表象)'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면서도 제 잘못을 감추려 대국민 거짓말과 위증을 서슴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난주 구형 공판에서 그는 최후 진술을 통해 다시 줄줄이 억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긴 공직생활의 끝에 이런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날 밤 대통령께서 비상계엄을 하겠다고 하시는 순간 저는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절벽에서 땅이 끊어지는 것처럼 그 순간 이후의 기억은 맥락도 없고 분명치도 않습니다…"
# "절벽에서 땅이 끊어지듯 기억 안 나"
그는 계엄 국무회의 후 이상민 당시 행안부 장관과 둘만 남아 '16분 동안 얘기하고 협의한 것'조차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라고 잡아뗐다. 직전 공판에서는 "경황이 없고 황망한 '멘붕 상태'가 계속돼, 보고 듣고는 하지만 그게 인지가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하더니 "인식과 기억은 없고, 영상을 본 검사가 말하는 대로 추측에 따라 답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그러고도 최후 진술 말미에는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지는 못했으나 그에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 그것이 오늘 이 역사적 법정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마지막 고백"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럼 좋다. 그렇다고 하자. 당시 이 나라 국정 제1인자 대통령은 각종 증언과 검증에 따르면, '술에 절어 살며 누구든 총 쏴 죽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심신미약자였다. 그런데 한 전 총리 말대로라면 제2인자 총리 자신도 긴급 상황에 '충격받으면 기억 맥락 다 잃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허깨비에 다름이 없었단 얘기가 아닌가. 50년 공직에 머물며 차관, 장관, 부총리, 총리, 대사 등 수십 개 고위직을 섭렵해 쌓은 경륜도 그걸 막지 못했다는 말 아닌가. 그런 둘이 다스리던 나라가 그나마 그때까지 견뎌온 게 천행이라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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