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대한 사찰 규모와 질서 정연한 인파가 인상적이다. 조선 통신사들이 기록으로 남긴 '붐비는 거리와 압도적인 공간감'을 오늘날에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다.<임 원장 제공>
내가 일본을 처음가서 느낀 것은 깨끗함과 친절함외에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모든 구조물이 엄청 크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섬나라이고 축소지향이라 모든 것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옛날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조선 통신사는 조선의 앞선 문물을 가지고 방문했으며 육지에 도착해 에도까지 가면 많은 구경꾼들이 몰렸고, 우리 문물을 흠모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방문단의 글씨를 받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그런 줄 알았다.
조선의 3대 기행문은 국내 여행기인 '관동별곡', 중국 북경을 다녀 온 '연행가', 조선 통신사의 일본 방문기록인 '일동 장유가(日東壯遊歌)'가 있다.
조선의 일본 통신사는 임진왜란 전후로 나눈다. 임진왜란 전에는 왜구 침입을 막고자 8차례나 방문했고, 전쟁 후에는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문화교류를 위해 1811년까지 12차례 방문을 했다. 상호 방문은 아니었고 조선에서 일본으로만 갔다.
일동장유가는 1763년(영조 39년) 통신사로 따라간 조선 후기 실학자 김인겸이 지은 기행 가사이다. 한양을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는 도중에 백성의 삶, 지방 관리의 부패한 모습을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에도까지 가는 여정을 그렸다. 기본적인 생각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조선이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왜인의 풍속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거리의 깨끗함과 정돈된 모습에 감탄하고, 일본의 성이나 사찰 규모에 놀라고 엄청난 인파에 신기해하기도 한다.
도쿄 시부야역 앞 교차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교차로로 알려진 곳으로, 신호가 바뀌는 순간 수많은 보행자와 이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까지 한데 섞이며 압도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임 원장 제공>
일본에 대한 우월적인 시각을 가지고 갔으나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 통신사가 가는 길에 우월한 조선 문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고, 지식인들은 통신사의 글씨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는 이야기도 재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 당시 조선 통신사 행렬은 단순한 외교 사절단이 아니라, 수백 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렬에 화려한 의복과 이국적인 풍물을 갖춘 행사였다. 그렇다면 이색적인 대규모 통신사 행렬이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그냥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몰린 것은 아니었을까? 지식인들이 서로 교류를 원한 것 또한 조선이 선진 문물일 수도 있지만 통제된 에도시대에서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그 당시 에도는 인구가 100만명으로 세계 최대 도시였다. 런던이 60만명, 파리가 50만명이었다. 에도 시대는 안정된 막부체제로 상업 또한 상당히 발전했다. 엄청나게 붐비는 사람들이 무사들의 통제 하에 질서 정연하게 도로에 앉아서 흐트러짐도 없이 구경하는 모습에 통신사들이 새로운 시각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이때부터 질서있고 깨끗하고 통제된 모습을 보인 것이 흥미롭다).
도쿄 시부야역 앞 교차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교차로로 알려진 곳으로, 신호가 바뀌는 순간 수많은 보행자와 이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까지 한데 섞이며 압도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임 원장 제공>
요즘 많은 일본인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거꾸로 한국인도 일본에 관심이 많다. 서로 음식도 노래도 좋아한다. 그런데 한일 양국은 정치인들이 필요에 따라 언제던지 국민들의 적대감을 부추길 수 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인의 말한마디로 서로 미워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서로가 단순히 상대방 언어를 알고 음식과 노래만 좋아하면 상황에 따라 금방 관계는 나빠진다. 모든 나라는 단순한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일본도 넓고 복잡한 나라이다. 소문을 통해서 아는 일본이 전부는 아니다. 상대방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서로 깊이 있는 만남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단체도 있지만, 평화 헌법 9조 개헌을 반대하는 모임도 있다. 질서 정연하고 조용한 사람들 뒤에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일본인들도 있다.
여러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인류 보편적인 자유,인권,차별에 대해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깊이 있는 양국 관계에 중요하다.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게이오대학 법정대학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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