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순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겨울, 울진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우순씨 가족 제공>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을 선택한 한 어르신의 이별이 지역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1940년생인 정우순(대구 달서구 두류동)씨는 지난해 늦가을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신장 기능 악화로 의료진으로부터 투석을 권유받았지만, 고인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씨는 생전 동구어르신대학에 다니며 합창공연 무대에 설 만큼 활기찬 노년을 보냈다. 또래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밝고 성실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었다. 비교적 건강한 일상을 이어오다 신장 질환 진단을 받았다. 투석으로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설명에도 고인은 치료 과정의 신체적 고통과 삶의 질 저하, 가족에게 미칠 부담을 헤아린 끝에 다른 선택을 했다.
신장투석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고인 스스로도, 세 딸도 알고 있었다. 딸들은 꽃이 피면 꽃구경을 가고, 가을이 오면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집중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에도 곧장 길을 나섰다.
특히 정씨는 자식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딸들이 놀라거나 큰 충격을 받을까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그는 스스로 요양병원 입원을 요청했다.
요양병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찾았고, 컨디션이 비교적 좋은 날에는 외출을 함께하며 짧은 산책이나 식사를 했다. 어머니가 드시고 싶다고 하는 음식도 챙겼다. 딸들은 남은 시간을 더욱 애틋하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셨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정씨는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단정히 손질했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딸들이 병실을 찾았을 때, 고인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딸들을 알아봤고, 평소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딸들은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고, 정 어르신은 큰 고통 없이 긴 여행을 떠났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곱게, 타인을 배려하며 살다 간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100세 시대,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길목에서 웰다잉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묵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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