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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메일] ‘참여형 천만’ 시대 : 관객이 완성한 서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26-03-09 06:00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2026년 3월 6일 오후 6시 30분. 대한민국 영화계는 다시 한번 불가능해 보였던 숫자를 마주했다. 장항준 감독의 사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1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25번째, 사극으로는 '명량'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흥행 궤적이다. 개봉 초기, 일부 평단에서 지적한 조악한 CG와 다소 전형적인 초반 전개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쏟아질 때만 해도 누구도 이 영화의 '천만'을 확신하지 않았다. 나 역시 설 연휴, 딸들의 손에 이끌려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빈틈을 스스로 채워 넣은 '비평가가 된 관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승리였다.


영화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비극적인 유배 생활을 다룬다. 역사 자체가 이미 거대한 스포일러인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목한 것은 피 튀기는 권력의 암투가 아니었다. 관객들은 박지훈이 연기한 '소년 왕' 이홍위의 처절한 외로움에 주목했고, 그를 묵묵히 지키는 이름 없는 민초 엄흥도(유해진 분)의 진심에 응답했다. 영화 속에서 단종은 왕으로서의 권위를 잃고 강원도 영월의 척박한 땅에 던져진 존재다. 여기서 관객들은 단순히 '불쌍한 왕'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관객으로 들어갔다가 백성이 되어 나온다"는 평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의 물길을 바라보며 함께 숨죽였고, 엄흥도가 관직을 걸고 왕의 시신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진 '의(義)'라는 가치를 스스로 복원해냈다. 이들은 영화 관람 후 강원도 영월의 장릉을 찾아 '성지순례'를 인증하며, 역사 속 비극을 현재의 위로로 치환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대 관객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주입하는 영화에 만족하지 않는다. '왕과 사는 남자'는 곳곳에 서사적 빈틈이 존재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 단점들을 '옥에 티'로 여기며 너그럽게 넘겼다. 오히려 관객들은 영화가 다 설명하지 않은 엄흥도의 고뇌를 상상으로 메우고, 배우 박지훈의 과거 필모그래피를 소환해 '단종의 환생'이라는 서사를 직접 구축했다. 특히 박지훈이 호랑이와 대치하며 "상대는 나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기술적 정교함보다 배우의 눈빛이 주는 서사가 압도적이라는 관객들의 비평적 지지가 잇따랐다. 유튜브와 숏폼을 통해 재생산된 팬메이드 영상들은 영화 본편보다 더 강력한 홍보 수단이 되었으며, 이는 비평가들이 기술적 결함을 논할 때 관객들이 이 영화를 '함께 키워가는 자식'처럼 여기며 자발적인 화력을 지원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천만 달성은 설 연휴라는 '천시(天時)'와 유해진·박지훈이라는 배우들의 '인화(人和)'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동력은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 말한 능동적 수용자(active audience)였다.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비극적인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스스로 형성했다. 특히 '박지훈'이라는 젊은 배우를 통해 Z세대 관객들이 사극에 유입되었고, 이들은 역사를 '지루한 공부'가 아닌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정의했다. 결과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관 안에서의 체험을 넘어, 관객들이 직접 써 내려간 리뷰와 해석들이 모여 거대한 '천만 성벽'을 쌓아 올린 셈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관객 동원은 "잘 만든 영화가 흥행한다"는 고전적 공식을 넘어, "관객이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완성시킨 영화가 천만이 된다"는 새로운 시대를 선포했다.


장항준 감독이 천만 돌파 소감으로 "관객분들이 제 부족함을 다 가려주셨다"고 밝힌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닌, 실제 이 영화의 흥행 원리에 대한 가장 정확한 분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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