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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윤일현의 ‘밥상과 책상 사이’…평범함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2026-03-08 17:25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맘때면 대다수 부모의 마음은 설렘보다 불안이 앞선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서열화된 교실 속에서 우리 아이만 뒤처지지는 않을지, 느린 학습 속도 탓에 도태되지는 않을지 조용히 비교의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긴 여정에서 정작 되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어디까지 선행 학습시켜야 안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아이가 제 속도로 자라날 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려 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교육은 아이를 끌고 가는 강제력이 아니라, 잠재력이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키는 정성에 가깝다. 기다림은 소극적 방관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굳건히 신뢰하는 적극적 태도다. 조용히 지켜보는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기 힘으로 균형 잡는 법을 배우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복원력도 익힌다.


현대 교육은 빠른 이해와 즉각적인 정답을 능력의 증표처럼 떠받든다. 그러나 속도는 역량의 한 단면일 뿐 본질은 아니다. 발달 단계에 따른 적기 교육을 강조한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위적 가속이 아이의 내면적 생명력을 소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해의 속도와 이해의 수준은 엄연히 다르다. 어떤 아이들은 정보를 재빨리 흡수하지만, 또 다른 아이들은 지식을 자기 안에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내면화 과정을 거친다. 겉으론 더디게 보일지라도 생각은 오히려 깊고 견고하다. 부모가 조급하게 정답을 대신 제시하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사고를 확장할 귀한 기회를 잃는다. 문제 앞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은 결핍이 아니라 축적의 과정이다. "왜 늦나?"라는 재촉 대신 "어디에서 생각이 멈췄니?"라고 묻는 구체적인 배려가 아이의 사고 근육을 탄력성 있게 만든다. 뿌리가 깊어야 줄기가 높이 자란다는 진실은 교실에서도 유효하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진 시대에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정답을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문제를 정의하는 힘은 가장 인간다운 경쟁력이 된다. 유대인의 전통 학습 방식인 하브루타는 그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들은 아이에게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먼저 묻는다. 질문은 아이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며, 그 낯섦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지적 용기의 표현이다. 부모는 완벽한 해설자가 될 필요가 없다. "그 질문은 어떻게 시작됐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묻는 순간, 아이의 사고는 격상된다. 질문의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 주는 경험은 '내 생각이 존중받는다'라는 자존감을 남기고, 그 감각은 창의성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질문을 존중받은 아이는 답을 외우기보다 스스로 길 찾는 법을 배우며, 그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진다.


많은 부모가 "우리 아이는 평범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아이의 가능성을 조기에 봉인해 버리는 체념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저서 '그릿(Grit)'에서 성공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선천적 재능'이 아닌 '열정과 끈기'를 제시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부르는 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눈부신 천재성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의미를 발견한 일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뒷심이 있었을 뿐이다. 평범함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무궁한 가능성의 출발점이다.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사소한 현상에 오래 머무는 태도, 실패 후에도 다시 시도하려는 의지 속에 비범함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 부모가 아이를 '관리의 대상'으로만 규정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세심한 관찰을 통해 아이의 고유한 능력을 읽어내는 신뢰가 필요하다. "네가 몰입하는 그 시간이 정말 귀하구나"라고 격려할 때 평범함은 자기만의 빛을 발한다.


교육은 그릇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이라는 말처럼, 신학기는 경쟁의 출발선이 아니라 탐험의 입구여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에 감탄하고, 빽빽한 일정 대신 하루 10분이라도 생각의 여백을 허락하며, 실패 앞에서 든든한 심리적 안전망이 되어 주는 태도가 아이를 스스로 걷게 한다. 부모가 앞에서 끌면 의존을 배우지만, 옆에서 함께 걸으며 "이 길엔 이런 풍경도 있네"라고 공감하면 아이는 제 삶의 주인이 된다. 비범함은 특별한 유전자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 삶의 리듬을 신뢰하며 쌓아 올린 지속성의 결과물이다. 평범함이라는 토양을 믿고 기다려 주는 용기 속에서 아이의 잠재력은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언젠가 스스로 꽃을 피울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가 자기 가능성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동행의 시간은 부모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숭고한 배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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