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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유배지를 찾아서] ① ‘왕사남’이 소환한 유배의 역사… ‘영남 유배 문화의 산실’ 포항 장기를 가다

2026-03-11 22:24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에 ‘유배 역사’ 관심 급증
211명 거쳐 간 영남 유배 1번지 장기면 주목
다산의 애민 정신, ‘유배문화체험촌’으로 부활

포항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비치된 형벌체험 조형물. 전준혁기자

포항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비치된 형벌체험 조형물. 전준혁기자

포항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 입구. 전준혁기자

포항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 입구. 전준혁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전국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조선시대 독특한 형벌인 '유배' 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조선시대 유배는 세상과의 강제적 단절이자 정치적 사형선고였다. 하지만 험준한 산세와 거친 바다를 가진 경북의 유배지는 오히려 그 고립의 시간 속에서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 학문과 절망을 씻어내는 불멸의 문장을 탄생시켰다. 죄인을 가두던 형벌의 공간이 인문학적 성찰의 장으로 거듭난 셈이다. 영남일보는 닫힌 문 안에서 오히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품었던 거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 '왕사남'으로 주목받는 유배 1번지 장기면


단순한 형벌의 땅을 넘어,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머물며 중앙의 문풍을 지역에 이식해 새로운 '문화의 요람'으로 피어난 장기면. 그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기 위해 포항시 남구 장기면 서촌리(285번지 일원)에 조성된 '장기 유배문화체험촌'을 찾았다. 포항시가 2015년부터 4년간 사업비 38억원을 투입해 1만 377㎡(약 3천139평) 규모로 조성한 이곳은 2019년 3월 22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체험촌 입구에서는 유배객을 실어 나르던 낡은 달구지와 그를 호송하는 관원의 조형물이 가장 먼저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이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장기로 오기 위해선 영남대로를 따라 무려 860리를 꼬박 9일 반 동안 걸어야만 당도할 수 있었다. 그 멀고 고단한 여정을 거쳐 간 정객과 학자들만 문헌 기록상 총 149회, 211명(남성 172명, 여성 39명)에 달한다. 단일 현(縣) 지역으로는 국내 최다 규모다. 체험촌 한편에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 문헌을 치밀하게 고증해 발굴해 낸 117명의 유배객 명단과 그 사유가 빼곡히 기록된 명패가 당당히 자리해 장기의 역사적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다.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마련된 우암적거지 전경. 전준혁기자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마련된 우암적거지 전경. 전준혁기자

◆ 우암 송시열의 적거지, 어촌 마을을 '야당 정치 1번지'로 바꾸다


체험촌 중심에 놓인 다리를 건너 먼저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극 세트장처럼 꼼꼼하게 고증된 초가집과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조선 후기를 호령했던 국로거유(國老巨儒) 우암 송시열의 적거지다. 척박한 변방의 어촌이었던 장기를 학문과 예절을 숭상하는 유향(儒鄕)으로 환골탈태시킨 첫 번째 주인공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1675년(숙종 1년), 제2차 예송논쟁의 험난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장기현 동문 밖 마산리의 사인(士人) 오도전 집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우암은 1679년 거제도로 이배되기까지 약 4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당대를 주름잡던 정치적 거물이었던 만큼, 그의 유배 생활은 그 시작부터 남달랐다. 그는 부실과 노복은 물론이고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증손자 일행까지 대가족을 대동하고 장기로 내려왔는데, 이는 유배객의 신분임에도 당시 우암이 가졌던 굳건한 정치적 입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학문을 논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우암 적거지의 방 안을 들여다보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이 짐작된다. 그는 배소에 수백 권의 서책을 비치하고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이정서분류(二程書分類)' 등의 굵직한 명저와 300수 내외의 시를 남겼다. 우암이 머문 4년 동안 장기는 명실공히 '조선 후기 야당 정치의 1번지'이자 영남 지역의 거대한 학문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우암의 묵직한 발자취는 장기 고을의 운명마저 바꿔놓았다. 거소의 주인이었던 오도전은 우암 문하에서 4년간 열과 성을 다해 수학해 훗날 장기현의 훈장이 됐다. 역사적 인물인 삼봉 정도전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우암이 직접 그의 이름을 '도전(道全)'으로 고쳐줬다는 일화는 이들의 깊은 사제지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암이 장기를 떠난 후에도 오도전을 비롯한 지역 향림들이 주축이 돼 죽림서원을 건립하는 등, 범속한 풍속의 고을이 선비의 고을로 탈바꿈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됐다.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복원된 다산적거지 모습. 전준혁기자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복원된 다산적거지 모습. 전준혁기자

◆ 다산 정약용의 적거지, 고독 속에서 민초의 삶을 보듬다


우암의 뜨거웠던 자취를 뒤로하고 우측으로 향하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곳은 우암이 유배된 지 126년이 흐른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박해에 연루돼 유배길에 오른 실학의 집대성자 다산 정약용의 적거지가 자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다산이 갇힌 장기의 마현(馬峴)은 자신이 태어난 경기도 광주군의 고향 마을과 이름도, 한자도 완벽하게 같은 곳이었다. 운명의 장난 같은 이곳에서 다산은 220일(약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지만, 그가 남긴 족적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수많은 인맥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들끓었던 126년 전 우암의 적거지와 달리, 다산의 배소에는 주인인 늙은 장교 성선봉 외에는 찾는 인적이 거의 없이 적막했다. 하지만 다산은 고독에 갇혀 절망하는 대신 민초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불굴의 투지로 학문 연구와 시작(詩作)에 전념한 그는 장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비친 고을 사람들의 풍속과 애환을 묘사한 '기성잡시 27수'를 비롯해 무려 130여 편에 달하는 주옥같은 시를 쏟아냈다.


특히 보릿고개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고단함과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를 고발한 '장기농가 10장'은, 빈곤의 원인이 사회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걸작이다. 다산의 실학 정신은 철저하게 장기 백성들의 실생활을 향해 뻗어 있었다. 당시 병이 들어도 약방문을 몰라 무당을 부르거나 뱀을 잡아먹다 목숨을 잃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겨, 주변의 흔한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간단한 한방치료책 '촌병혹치(村病或治)'를 저술해 널리 알렸다. 또한 바닷가로 나가 어부들의 칡넝쿨로 그물을 엉성하게 만든 것을 보고, 무명과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어 소나무 삶은 물에 그물을 담갔다 사용하는 부식 방지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장기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보듬었던 이 애민 정신은 훗날 명저 '목민심서'의 튼튼한 밑거름이 됐다.


체험촌에서 만난 김필영 문화관광해설사. 전준혁기자

체험촌에서 만난 김필영 문화관광해설사. 전준혁기자

◆ 형벌의 역사를 넘어 문화 관광 콘텐츠로 웅비하는 장기


두 거물의 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아픔의 역사를 어떻게 현대의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그 해답이 보인다. 김필영 문화관광해설사는 "현재 주말이면 100~200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으며, 인근 장기읍성이나 호미반도 해안둘레길과 연계한 역사 탐방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고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체험촌 조성의 숨은 비화도 흥미롭다. 김 해설사는 "실제 다산과 우암이 머물렀던 적거지는 장기초등학교 인근으로 추정되나, 이미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형성돼 부득이하게 현재의 산자락에 체험촌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공간적 한계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 부족하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포항시는 향후 인근 부지를 매입해 전문 전시관을 짓고 체험 시설을 확충해 진정한 유배 문화 테마파크로 확장하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산골 마을이 유배 온 왕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듯, 장기의 땅은 거물급 유배객들이 뿌린 학문의 씨앗으로 지역 구성원들의 운명과 영남 지성사 전체가 바뀌는 극적인 역사를 실제로 경험했다. 형벌과 단절의 땅에서 찬란한 문화의 요람으로 거듭난 장기면. 이곳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흔적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깊은 소통과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는 포항의 독특한 역사 문화 관광 콘텐츠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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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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