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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봄빛을 깨우듯 화폭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

2026-03-13 06:00

물결로 본 우리 옛 그림

정선, 무송관폭도 부분, 종이에 수묵,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 '무송관폭도' 부분, 종이에 수묵, 간송미술관 소장

봄빛의 날갯짓이 한창이다. 꽃망울의 아우성에 마음도 덜썩인다. 화초의 물먹는 소리가 밥 뜸 들이는 소리 같다. 얼었던 계곡물이 풀린다는 소식이다. 나뭇가지에 벌써 연두색 물이 올랐다. 얼었던 화폭에도 물결이 출렁인다.


◆정선과 최북, 물소리를 그리다


봄은 물소리에 기지개를 켠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이 방울방울 모여 거미줄처럼 퍼진다. 졸졸졸 흐르던 물이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된다. 물은 계곡을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화가들은 물결의 다채로운 몸짓과 표정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특히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물결은 연기력이 발군이다. 잔잔한 강물이 있는가 하면 장쾌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도 있다. 파도가 넘실거리다가 물결이 찰랑이기도 한다. 장엄한 숲을 헤치며 거칠게 흐르는 물길은 산수에 리듬과 운치를 더한다. 그는 물결이 파동 치는 모양을 포착하는 '수파묘(水波描)'를 십분 활용한 '물의 화가'였다.


'무송관폭도(撫松觀瀑圖)'를 보자. 제목에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어슬렁거린다'는 뜻이 있다. 도연명의 고사에서 소재를 빌린 전형적인 관념산수다. 정선은 젊은 시절, 중국의 그림책을 보고 기법을 연마했다. 이 그림은 물소리에 심취한 도인이 주인공이다. 봄바람에 이끌려 도인은 소나무 앞에 섰다. 적막했던 계곡에 난 물길이 숲을 흔든다. 상류의 물은 휘몰아쳐 흐르다가 작은 폭포를 만들고 강으로 흘러든다.


장대한 소나무가 화면의 중심을 잡는다. 오른쪽 산맥을 강한 먹으로 그려서 무게를 실었다. 왼쪽 중간에 낮은 언덕을 배치해 계곡을 만들었다. 물은 삼단 폭포를 이루며 강으로 접어든다. 흰 물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계곡의 풀과 바위를 진한 먹으로 강하게 표현했다.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도인은 물소리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연다. 도인은 한 소식을 얻었는가.


봄의 정취가 그윽한 가야산 홍류동 계곡. 깊은 골짜기는 아직 얼었지만 햇살이 따스하다.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를 따라 계곡 깊이 들어간다. 마른 풀들이 물을 머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불그스레하다. 봄 맞을 준비를 한다. 머지않아 새싹이 돋아나 찬란한 여름을 이루리라.


최북, 계류도, 종이에 엷은 색, 28.7×33.3㎝, 고려대박물관 소장

최북, '계류도', 종이에 엷은 색, 28.7×33.3㎝, 고려대박물관 소장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시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을 접하고는 붓을 들었다. 바로 '계류도(溪流圖)'다. 최치원은 말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은거하며 세상의 소리를 끊고 자연의 소리를 벗하며 살았다.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의 사람 말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세상의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싸게 했노라." 최북은 최치원의 마음을 알아챈다. '이심전심'이랄까, 큰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계류도'는 수묵으로 표현해 다소 단출한 느낌을 주지만 함축된 뜻이 강하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물을 배제한 갈필로 언덕과 흙을 그렸다. 풀과 작은 나무는 먹물을 묻힌 붓으로 크게 점처럼 찍어 표현했다. 물결은 푸른색을 연하게 색칠해 투명하다. 돌을 강한 먹으로 그려, 물길이 자연스럽게 계곡을 타고 흐른다. 앞의 언덕은 사선으로 긋고 점을 찍어 변화를 주었다. 왼쪽 여백에는 최치원의 시 중 3, 4구를 쓰고, 호생관 아래 낙관을 했다. 화려한 숲과 나무를 배치하지 않았어도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김홍도, 치아시영, 비단에 엷은 색, 81.6×42.6㎝,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치아시영', 비단에 엷은 색, 81.6×42.6㎝,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와 이윤영, 물에서 노닐다


아지랑이 가물대는 초봄을 만끽하기엔 연못 산책이 최고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하늘거리며 바람에 나풀거린다. 물가에 거위 가족이 나들이를 왔다. 새들이 봄 햇살을 가르며 즐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사계절을 담은 8폭 병풍에 꽃과 나무, 새들의 일상을 그렸다. 그 중 봄을 노래한 '치아시영(稚鵝試泳)'은 새끼 거위가 헤엄치며 노는 장면이다. 병풍은 연속 장면을 재밌게 묘사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각 폭 상단에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의 제시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치아시영'은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박힌 버드나무가 연못 쪽으로 휘어져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준다. 상처투성이 나무둥치는 거칠게 묘사했고, 굵은 가지는 생을 다했는지 고목으로 남았다. 다른 가지에는 초록 봄 이파리들이 젊음을 과시한다. 하늘에는 새가 날아오른다. 버드나무 가지에 앉은 새는 비상하는 새를 바라본다. 나뭇가지 중간에서 또 한 마리의 새가 거위 가족을 내려다보고 있다.


얼었던 물이 풀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버드나무 아래서 수컷 거위가 앞장선다. 암컷 옆에 새끼 두 마리가 수컷을 따라 헤엄을 친다. 물속에 헤엄치는 거위의 다리가 투명하다. 물결은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했다. 화면 중앙 위에는 유한지가 쓴 "가련하구나. 우군(右軍)의 글씨와 바꾸지 않으리라"는 글이 있다. 우군은 중국 진나라 서예가 왕희지(王羲지)를 일컫는다. 김홍도의 호 단원 아래 '홍도(弘道)'와 '사능(士能)'이라는 인장을 찍었다.


김홍도는 새들이 노니는 그림에 "그윽한 물가를 가고오니 한가로움 이기지 못 하겠구나"는 시 구절을 즐겨 썼다. 무르익은 봄을 즐기기 위해서는 혼자보다 둘이 좋다. 마침 날씨가 풀리자 고란사에 계신 스승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간다. 돌아오는 길에 지리산 근처에 사는 친구가 보고 싶어 발길을 돌린다. 만물이 피어오르는 봄, 벗을 만나는 것은 지고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이윤영, 고란사도, 종이에 엷은 색, 29.3×43.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윤영, '고란사도', 종이에 엷은 색, 29.3×43.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은 고란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던 중 선비 화가인 원령(元靈)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을 만난다. 그날의 만남을 '고란사도(皐蘭寺圖)'에 기록했다. '고란사도'는 백마강에서 선비 둘이 배를 타고 고란사를 감상하는 산수화이다. 선비는 이윤영과 이인상 같다. 기암괴석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장엄하다. 산줄기에 수묵을 찍어 나무와 숲을 처리했다. 절벽 바위를 갈필로 층층이 쌓아 날카롭게 보이도록 했다. 가지가 앙상한 나무와 소나무를 배치해 절벽과 조화를 이루었다. 강가에는 큰 바위가 폭포 아래 우람하게 자리 잡았다. 따스한 공기를 품은 폭포수가 물안개를 만든다. 찰랑이는 물결이 강으로 흘러든다.


푸른색의 물결을 가르며 뱃사공이 느리게 삿대를 휘젓는다. 배 위에는 두 선비가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선비들 앞에는 술통과 서책이 있다. 화면에 푸른색을 칠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청렴한 이인상과 학식이 깊은 이윤영의 성격이 잘 드러난 아름다운 봄 풍경이다.


그림을 마친 이윤영이 제시를 달았다. "무진년(1748) 봄에 고란사에서 반천(盤泉) 윤씨 어른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지리산에 있는 원령을 방문하였다. 강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다가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이 있어 대략 마른 먹을 사용하여 화폭에 담고 한바탕 웃고자 한다. 윤영." 유유상종이라 했다. 고매한 친구 옆에 맑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모여들기 마련이다.


◆물, 봄을 재촉하다


환절기 탓인지, 기온 변화가 심하다. 미친 듯이 바람도 분다. 기온이 껑충 올라 얇은 옷을 입었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날린다. 꽃망울을 메이크업하듯 눈이 내려앉는다. 꽃의 온기에 눈송이가 금방 녹는다. 맑은 물방울이 꽃으로, 땅으로 스민다. 이제 벙그는 봄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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