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찜질방 등 중장년층이 즐기던 웰빙 공간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체험형 공간'으로 인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박모(26·대구 수성구)씨는 최근 경북 청도의 한 찜질방에 '오픈런'을 했다. 이전에 방문했을 당시, 바로 입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주차장엔 차량이 만차였다. 입구로 들어가니 대기만 50여팀이었다. 오후인 점을 감안해도 찜질방을 이용하기 위해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아했다. 안내받는 동안에도 손님은 계속 들어왔다. 김씨는 결국 방문을 포기하고 최근 다시 이곳을 찾았다. "찜질방이 이렇게까지 인기일 줄은 몰랐어요. 제가 방문한 곳은 조금 이색적인 찜질방이지만, 도심에 위치한 곳은 아니라 한산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에도 자주 뜨고, 가보니 젊은 사람도 많더라고요."
휴식과 회복을 중시하는 '리커버리노믹스(Recovery-nomics)'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찜질방과 사우나, 쑥뜸방 등 웰빙 공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에 방문해 시간과 돈을 쓰는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들 공간에 이색적인 콘텐츠가 결합되면서 최근엔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체험형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스타그램 사우나 전문 계정 '고독한사우너'. 7만2천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고독한사우너(@godoghan_sauner) 계정 캡처>
◆SNS엔 사우나 전문 계정도 등장…온천 문화 다시 인기
찜질방과 사우나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폐업 위기에 몰린 기피 1순위 시설이었다. 팬데믹 시기 감염병에 취약한 시설이라는 인식 속에 직격탄을 맞았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행된 2020년 3월부터 3년 동안 목욕장업으로 등록된 업소 중 900여곳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온천 문화가 다시 인기다. 중장년층이 즐기던 이 문화는 이제 젊은 세대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사우나 검색량은 지난해 9월 9만3천800건에서 지난 1월 16만8천건으로 79% 증가했다. 이 중 2030 검색 비율은 44.5%를 차지했다. 40대는 29.8%, 50대 이상은 20.6%였다.
SNS도 이런 흐름에 한몫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고독한사우너' '닥터사우나' '먼데이사우나' 등 팔로워 2만명이 훌쩍 넘는 사우나 전문 계정들이 전국 찜질방과 사우나 정보를 공유한다. 함께 사우나를 다니는 '사우나단'을 모집하는 등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도 함께 만들고 있다.
최근 사우나, 찜질방 등 웰빙 공간이 업장마다 다양한 즐길거리를 내세워 '체험형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건강 관리+이색 콘텐츠…'체험형 공간'으로 각광
사람들이 이곳들을 찾는 이유는 '힐링 공간'이자 '체험형 공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색다른 경험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사우나의 혈액 순환 개선과 회복 촉진 효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업장이 정형화된 시설과 분위기에 머물러, 동네 목욕탕 이상의 특별함을 주지 못했다. 최근에는 '이색 찜질방'이라는 주제로 콘텐츠가 만들어질 정도로 업장마다 차별화된 즐길거리를 내세워 방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 소비되는 추세다.
직장인 김정민(29·대구 달서구)씨도 "예전에는 목욕하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즘 찜질방은 친구들과 놀러 가는 느낌이 더 크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찜질방에서 파는 음식도 다양해져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며 "찜질도 하고 음식도 먹고 사진도 찍다 보면 반나절이 금방 지나간다"고 덧붙였다.
청도 '군불로' 사우나 공간. 국내산 소나무로 직접 장작을 때서 불을 지핀다. <군불로 제공>
청도 군불로 찜질방 옆 식당에선 숯불 삼겹살 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군불로 제공>
도심과 멀어질수록 공간의 규모와 즐길 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경북 청도에 위치한 '군불로'는 찜질방인 군불로와 카페 '로카', 눈체험장 등이 한데 모여 있는 관광농원이다. 군불 앞에 있는 것처럼 이름부터 후끈한 이곳은 국내산 소나무로 직접 장작을 때서 불을 지핀다. 최고 800~900℃까지 열기가 난다. 찜질방은 72℃ 불한증막부터 소금방, 라벤다허브방, 아이스방 등이 있다. 군불로 옆 식당에선 숯불 삼겹살 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찜질방 이용에 숙박, 삼겹살 무제한을 묶은 패키지도 있다. 어른들이 뜨거운 불 앞에서 몸 푸는 동안 아이들은 눈체험장에서 신나게 몸을 날릴 수 있어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는다.
울진 덕구온천 시설 내부.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온천수를 그대로 사용하며, 야자수 등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덕구온천 제공>
온천 역시 색다른 콘셉트로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울진의 덕구온천은 국내에서도 드문 자연 용출 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온천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온천수를 그대로 사용한다. 온천 시설 내부는 야자수 등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변을 숲과 산이 둘러싸고 있어 노천탕에서는 자연 속에 완전히 놓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비용적 요인 역시 영향을 미쳤다. 가격대가 비교적 높게 형성된 피부 관리 시술이나 전문 테라피와 비교해 부담이 덜하다. 피부 관리나 마사지는 한 번 이용하면 적게는 몇 만원, 많게는 십만원대가 넘어가지만 사우나는 1만원 안팎으로 이용할 수 있다. 9일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지역별 평균 목욕(성인 일반대중탕 1회) 요금은 대구 9천원, 경북은 8천231원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쑥뜸'을 검색하면 나오는 콘텐츠들. 5천개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쑥뜸'도 주목…한류 열풍에 외국인 관광객엔 관광 코스로
이런 흐름 속에서 비교적 생소했던 '쑥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쑥뜸은 쑥을 태워 발생하는 열기와 연기를 이용하는 전통 온열 요법이다. 뜸기 안에서 퍼지는 열이 몸을 덥히고, 쑥을 태울 때 나오는 원적외선이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8일 네이버 키워드 검색량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7월 7천건 수준에 머무르던 '쑥뜸' 검색량은 지난달 3만건을 돌파했다. 원래 중장년층이 건강 관리 차원에서 찾던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피로 회복과 힐링을 위한 체험 콘텐츠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받고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쑥뜸방을 운영하는 A씨는 "예전에는 50대 이상의 단골들이 대부분 찾았지만, 요즘은 SNS를 보고 찾아오는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넷플렉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인 그룹 헌트릭스 멤버들이 사우나를 이용하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이런 웰빙 공간들이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찾아가는 공간이 되자,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관광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찜질방은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흥행 이후 더욱 대중적인 인기를 보인다. '케데헌'의 주인공인 그룹 헌트릭스 멤버들이 투어를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대중목욕탕에 가는 장면들이 노출되면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젊은 세대의 "'능동적 회복(active recovery)'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라 분석하며, "현재의 젊은 층은 건강 정보를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루틴을 직접 선택하고 체험을 통해 검증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겪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는 단순 관리가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초기화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