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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목욕탕에서 싸움 구경을 하다

2026-03-16 06:00
이은미 변호사

이은미 변호사

나는 목욕탕 가는 것을 즐기는데 예전에는 가끔 출근 전 사무실 근처 목욕탕에 들르기도 했다. 출근 전에 목욕탕에 가면 씻고 나올 무렵 아침 드라마가 나왔다. 몸을 닦으면서 TV를 멍하니 보는데 중년의 여자 배우가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두부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아침 드라마는 볼 때마다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출소 장면은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촬영하는데,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부터 수용시설로 운영하지 않는다. 지금은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출소 후 두부를 먹는 모습은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과거에 출소 시 두부를 먹였던 이유는 두부의 흰색이 새 출발의 상징이라고 여겨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뜻에서 먹이기도 했고, 수용시설에서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단백질을 먹이는 취지도 있다고 한다.


동네 목욕탕에는 나름 기득권 세력이 존재한다. 바로 '달 목욕'을 끊는 사람들인데 월 단위로 목욕비를 계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예 목욕 바구니를 목욕탕에 보관하고 매일 같이 목욕탕에 온다. 누구 한 명이 들어오면 언니 언니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다 아는 사람들 같다.


나는 지난 주말에도 목욕탕에 갔는데, 다 씻고 나와서 옷을 입고는 루틴대로 바나나맛 우유를 사서 평상에 앉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매점 아주머니(이하 '매점 언니'라고 한다)와 바닥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이하 '청소 언니'라고 한다)가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 입장을 내세우며 거친 말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은근히 도파민이 솟았다. 마치 무료한 삶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나나맛 우유를 내려놓고 그 싸움을 직관하며 둘 중 누가 옳은지 마음속으로 판결 내리기로 했다. 일단 사건 내용을 분석하니 싸움의 발단은 이렇다.


원래 여탕에서는 목욕탕 입장 시 결제하면 수건 두 장을 주는데 어떤 사람들은 수건이 부족해서 '청소 언니'에게 수건을 한 장 더 달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세탁된 수건을 개는 작업도 청소 언니가 하기 때문에 청소 언니는 많은 수건을 지배하고 있다. 청소 언니는 누군가 수건을 더 달라고 하면 한 장씩 더 주곤 했다. 그런데 '매점 언니' 입장에서는 목욕탕 룰이 인당 수건 2장이고, 수건을 더 주면 누구는 더 많이 쓰고 누구는 덜 쓰는 형평에 어긋나는 문제도 있는데다 수건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서 입구에서 계산할 때 주는 수건 외에는 절대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소 언니는 고객이 필요하다는데 그럼 안 주냐 하는 입장이었고, 매점 언니는 그러면 목욕탕 운영의 관점에서는 손해가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한 사람은 고객 만족을 위해, 한 사람은 사측 손해 방지를 위해. 둘 다 나름 동기는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너는 체면만 중시한다, 언니는 이기적이다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둘 다 발끈해서 청소 언니는 바닥의 물을 닦던 밀대를 탁 던지고, 매점 언니는 행주를 탁 내려놓고 몸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서로에게 가까이 갔다. 머리끄덩이 잡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그들 모두와 친한 '달 목욕' 아주머니들이 달려들어서 광분한 둘을 떼어 놓고 둘이 이러면 안 된다 어쩌고 하면서 달래기 시작했다. 결국 육탄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 뒤끝 있는 안예쁜 말을 몇 번 주고받으며 끝냈다. 둘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누가 옳은지 판결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손님의 입장에서는 넉넉한 인심의 청소 언니 편을 들고 싶었다. 세신사의 도움 없이 때를 미는 몸테크도 하고 싸움 구경도 하고 상큼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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