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부품서 로봇 전환 에스엘 현장 가보니
로봇 자체 수급·공급 기업 변신 성공적
차부품사 로봇 전환 러시…기술 유사성
“대구 AI로봇 수도 도약 가능성 충분”
“대구만의 60년 제조 데이터 활용해야”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에스엘주식회사 전자공장에서 AGV(Automated Guided Vehicle·무인운반로봇)가 완성된 LED 모듈을 제품 창고로 운반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yeongnam.com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에스엘주식회사 전자공장에서 AGV(Automated Guided Vehicle·무인운반로봇)가 완성된 LED 모듈을 제품 창고로 운반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yeongnam.com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달서구 에스엘주식회사 전자공장에서 관계자가 에스엘주식회사 ZIO ROBO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yeongnam.com
봄기운이 올라오던 지난달 25일 대구 달서구에 있는 에스엘<주> 성서전자공장. 국내 차량용 LED램프의 60%가량을 공급하는 이곳 현장에서는 무인운반로봇(AGV) 7대가 사람을 대신해 완제품을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작업자가 검수를 마친 상품을 컨베어에 올리면 로봇이 운반하는 구조다. 상품을 받은 로봇은 팔을 움직여 라벨을 읽고, 이내 이름과 수량을 인식해 국내용과 수출용 상품으로 구분했다. 이동 과정에서 사람(장애물)과 마주치자 스스로 멈춘 후 경로를 변경하는 똑똑함도 보여줬다.
같은 시각 3층 인쇄회로기판(PCB) 공정 라인에서는 에스엘산 자율이동로봇(AMR)들이 부산히 움직였다. 최대 250㎏까지 거뜬한 이 물류로봇은 자율주행을 바탕으로 제조 현장을 제 집 안방처럼 누볐다. 이들 로봇은 충전도 홀로 척척이다. 호출이 없거나 배터리가 30% 이하면 로봇 스스로 자동충전구역으로 이동했다. 야근 수당도 필요 없다. 직원들이 퇴근한 저녁 시간에도 작업량이 남아 있으면 로봇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이들이 본격 현장에 투입되면서 과거 230명까지 일했던 이곳은 180여명까지 줄었다. 에스엘 이규용 생산기술팀장은 "과거 6명이서 담당했던 부품과 제품 운반을 로봇이 투입되면서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작업 능률은 물론, 현장의 안전사고 위험까지 덜었다"고 말했다.
대구 대표 자동차부품사인 에스엘이 로봇까지 품으면서 실적과 주가는 날아올랐다. 작년 에스엘의 매출액은 5조2천399억원으로, 전년 대비 5.4% 성장했다. 5년 전(2조5천50억원)보다 두 배 넘게 확대됐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로보틱스 사업의 핵심 협력사로 지목되면서 최근 1년간 시가총액이 100% 넘게 뛰었다. 에스엘은 올해를 자율이동로봇 및 휠구동 액추에이터 양산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로봇 사업군까지 본궤도에 오르면 에스엘의 성장 속도도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부품과 자동차 부품의 기술적 유사성 설명도. <대구정책연구원 제공>
◆자동차와 로봇은 형제?…기술적 유사성 주목
에스엘의 사례는 대구 로봇산업의 출발과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구는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부품사 집적지로 로봇부품 부문으로 사업을 고도화할 잠재력을 갖춘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에스엘을 필두로 삼익THK<주>, <주>삼보모터스 등은 이미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경창산업<주>도 최근 로봇산업 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자동차부품사들의 로봇 전환 바람에는 자동차와 로봇이 마치 형제처럼 주요 기술을 공유한다는 데서 견인한다. 로봇 구동에 필수적인 모터· 조향장치·배터리·구동계 기술 등이 모두 자동차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제어 신호를 받아 물리 동력을 전달하는 로봇의 구동장치인 액추에이터는 자동차 조향시스템과 기술 원리가 거의 같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신호를 이용해 자동차 바퀴를 조작하는 조향시스템인 'SBW(Steer-By-Wire)'는 로봇의 다관절 제어 기술로 전환 가능하고, 전기신호로 자동차 제어장치를 제어하는 'BBW(Brake-By-Wire)' 기술은 로봇의 정밀 힘 제어 모듈과 유사하다.
센서부에서도 기술적 유사성이 관측된다. 차량 부품 중 카메라 및 라이다(LiDAR) 등은 로봇의 센서모듈과 기술적 유사성이 높다.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 및 자율주행에 활용되는 카메라 모듈·센서 기술 역시 로봇의 주변환경 인식 및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비전·환경 인지 센서 분야와 기술적 원리가 사실상 같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차량용 전장제어기(ECU/DCU)와 로봇용 중앙제어기는 복잡다단한 외부 입력을 실시간으로 처리해 정밀한 움직임을 명령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배터리 역시 리튬이온 기술을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 극대화 및 안정성 확보를 위한 지능형 배터리관리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량용과 로봇용이 유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상현 대구정책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은 "자동차산업은 로봇을 활용하는 산업에서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로봇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액추에이터(모터, 제어기, 감속기 등) 분야는 자동차부품과 기술적 유사성이 있어 관련 지역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AI로봇 수도 가능성 충분…사람이 중요해"
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장 <DMI 제공>
"60년 이상 제조 데이터가 축적된 곳입니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이만한 곳이 또 없어요."
'왜 AI로봇 수도가 대구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한 송규호 대구기계부품연구원(DMI) 원장의 답이다. 2019년부터 제6~8대 DMI 원장을 역임 중인 그는 지역 기계부품산업 미래전략을 총괄하는 베테랑으로, 지역 로봇산업의 '퍼스트무버(시장 개척자)'로 꼽힌다.
송 원장은 지역 AI로봇 산업의 뿌리를 섬유에서 찾았다. 그는 "1960~70년대 대구는 대한민국 근대·산업화 중심이었다. 당시 대구는 섬유산업을 주력으로 삼았고, 방적기·제직기 등 섬유기계 수요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기계부품산업이 성장했다"며 "섬유산업이 저물면서 이 기술·인프라는 자동차 쪽으로 넘어간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계부품 인프라가 결국 로봇산업 부흥의 토양이 됐다"고 설명했다.
AI로봇 수도 가능성을 묻는 다소 성급한 질문에도 그의 답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그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제조 데이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송 원장은 "개념설계 수준이던 와트(Watt)의 증기기관을 완성한 건 결국 영국의 엔지니어들이었다. 이탈리아 한 제조 회사의 메가 프레스 기술이 없었다면 테슬라의 전기혁명도 없었다"며 "제조기술의 오리지널리티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로봇 역시 이 제조 데이터에서 판가름난다.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은 로봇은 깡통일 뿐"이라며 "대구는 1960년대부터 섬유·기계 등에서 방대한 수준의 제조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를 구조화하고 정형화하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AI로봇이 지역사회에 미칠 여파도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AI로봇 산업 활성화는 지역 기계부품산업의 중심지 성서산업단지와 IT기업 집적지 수성알파시티의 공간적 연결을 의미한다"면서 "전통과 미래산업을 잇는 효과도 있다. 뿌리산업 영역의 중소·중견기업들과 ICT업종의 스타트업이 만나면서 새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될 수 있다. 산업구조 자체가 고부가가치 지식데이터 산업 위주로 바뀌면서 젊은이들이 대구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과제도 만만찮다. 송 원장은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관련 인재는 결국 지역에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당장 필요한 건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다. 학연·지연에 목매지 말고 역량 있는 인재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교육기관들의 연구역량은 충분하지만, 산학협력을 전혀 안 하고 있다"면서 "대구경북 거점대학의 젊은 교수와 두뇌들이 연구과제에 집중할 게 아니라 현장에 뛰어드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애정 어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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