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차량 5부제 의무 첫날
대구 공공청사 체감 ‘미미’
공공부문부터 에너지 수요 감축
“에너지절약 베이비스텝, 시작에 의미 둬야”
25일 대구 수성구청 입구에 중동사태에 따른 고유가 상황 지속으로 시행된 승용차 5부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날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승용차 5부제는 공무원 등 공공부문 차량에 적용되며, 방문 민원인 차량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유가와 물류비, 통근·교통 비용을 거쳐 생활물가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 장기화로 원유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다. 이에 정부는 지난 18일 자원안보위기 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하며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최근엔 '중동 사태 관련 에너지절약 등 대응 계획'을 발표하며, 25일 0시부터 공공기관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는 등 직접적인 에너지 수요 감축에 착수한 상태다. 영남일보가 모두 3차례에 걸쳐 중동발 에너지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민생 현장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25일(수요일) 오전 9시쯤 찾은 정부대구통합청사 업무 A동 지하 1층 주차장. 이날은 차량번호 끝자리 3번과 8번 차량의 운행이 제한되는 날이지만, 해당 번호 차량들이 주차된 모습이 주차돼 있었다. 구경모기자
◆'차량 5부제 의무' 첫날, 체감은 '미미'
'차량 5부제 공공기관 대상 의무화' 첫날인 25일 오전 9시쯤 찾은 달서구 정부대구합동청사 주차장. 공공부문 의무 시행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출근 시간대 청사 입구엔 차량들이 별다른 제지 없이 잇따라 들어섰다. 번호판 끝자리를 확인하거나 운행 제한 대상을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업무 A동 지하 1층 주차장은 이른 시간부터 주차 차량이 빠르게 들어찼다. 수요일인 이날은 차량 번호판 끝자리 3번과 8번이 5부제 적용 대상이 되는 날이지만, 실제 주차장 안에는 해당 끝자리 번호 차량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취재 결과, 전날 주차를 했거나 5부제 대상으로 뒤늦게 적용된 경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 등이 대다수였다.
정부대구합동청사관리소 최정심 행정과장은 "청사 내 등록 차량은 기존에도 차단기를 통해 5부제를 적용해 왔다"며 "하이브리드차와 경차 등도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는 추가 공문이 전날 저녁에 발송됐다. 확대 사실이 뒤늦게 공유된 측면이 있어 직원들 사이에 혼선을 빚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민원인 등 방문객에게도 5부제 시행에 따른 적용 대상과 운영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안내해 불필요한 혼선을 줄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1시30분쯤 찾은 동구 대구경북병무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번호판을 확인하거나 운행 제한을 알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병무청 주차장에도 5부제 적용 위반 차량들이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대구경북병무청 이범현 홍보계장은 "오전에는 따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오후엔 입간판을 설치했다. 이날 자체점검을 실시해 5부제 미준수 차량은 모두 이동조치 했했다"며 "확인 결과, 모두 전날에 주차된 차량이었다. 5부제 시행이 본격화된 만큼 앞으로는 잘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수요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경북병무청 주차장. 이날은 차량번호 끝자리 3번과 8번 차량의 운행이 제한되는 날이지만, 해당 번호 차량들은 별 다른 제지 없이 청사내부로 출입할 수 있었다. 구경모기자
◆공공부터 수요 감축 나섰지만…실효성은 과제
공직사회에선 '차량 5부제 공공기관 대상 의무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았다. 정작, 공공기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만 않으면 되기에 5부제 시행으로 인한 에너지 절약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워서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 달서구청 한 직원은 "애당초 주차면수가 부족한 일부 노후 청사의 직원들은 청사 밖에 차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청사 주차만 막는 방식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원들의 부담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지침상 인구 30만~50만명 규모의 시·군은 장거리 출퇴근자 등에 대해 5부제 면제가 적용되지만, 대구처럼 23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권 기관은 예외 규정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대구와 인근 경북 시·군을 오가는 장거리 통근 직원들의 고충도 적잖다. 경북 경산에서 대구고용노동청 서부지청으로 출퇴근하는 한 직원은 "출근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만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날이 적지 않다"며 "장거리 통근자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차량 운행만 제한하면 현장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차량 5부제 시행 조치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시행 초기 현장 혼선과 불응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경북대 하혜수 교수(행정학과)는 "차량 5부제는 원칙적으로 실효성이 있어야 하는 정책이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왜 혼선과 불응이 나타나는지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강제보다 유인책과 보완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단순 산술적으로 보면 제도가 제대로 지켜질 경우 공공부문에서 운행되는 차량의 석유 소비를 20%가량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는 있지만,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는 수요 감축의 첫 단계, 일종의 '베이비 스텝'으로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경모(대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