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위기 동참 필요” vs “현실성 부족·매출 타격”
전문가들, 단순 절약 넘어선 에너지 생산구조 개편 촉구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정부가 국민의 자발적 절약에 기반한 수요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승용차 5부제 참여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가정 내 가전제품 효율적 이용 등 '허리띠 졸라매기'식 권고가 쏟아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정부 방침에 공감하고 있지만 단지 생활습관 교정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는 '에너지 생산구조'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중동발 자원안보위기 경보 발령에 따른 '에너지절약 국민행동' 12개 수칙을 내놓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 "불편은 불가피" vs "현실성 떨어진다"
정부가 내놓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경북 경산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환승(24)씨는 절약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도 다시 한번 내 소비습관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는 결국 다 같이 써야 하는 자원이다. 위기 상황 때엔 함께 줄일 수밖에 없다.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 위기가 왔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최소한 절약 방향이라도 제시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임경환(29·대구 달서구)씨도 "시민들도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공공기관부터 움직이고 시민이 호응하는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잖다. 달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수환(31)씨는 "저녁시간 가전제품 사용을 줄이고, 휴대전화는 낮에 충전하라는 수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특히, 자영업자들은 냉난방이나 조명을 줄이는 일이 매출하고 직결된다. 공장이나 건물, 대형 상업시설의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게 더 실효성 있을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 북구 산격동에 사는 직장인 김도현(34)씨도 "절약은 결국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시민들이 납득할 필요성, 효과 등을 같이 설명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동 상황에 따른 에너지 절약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베란다에서 전기를 만든다고?
시민들은 '에너지 자립'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전쟁추경'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가정용 태양광 보급 사업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다. '베란다 태양광'과 같은 가정용 소형 태양광 패널은 한 달간 냉장고 한 대를 돌릴 수 있는 수준의 전기(30~40kWh)를 생산한다. 주부 이지민(45·대구 수성구)씨는 "아파트가 많은 국내 주거환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면 한번쯤 설치해보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윤석(63·대구 동구)씨는 "설치 후 관리 등 추가 비용을 생각하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태양광 패널이 생산하는 게 오히려 더 환경을 파괴하고, 에너지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기억도 있다. 더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영남대 정재학 교수(화학공학부)는 "국내 전체 에너지에서 석유·화력발전 비중은 여전히 50% 안팎으로 크다. 장기적으로는 태양광 같은 대체에너지 비중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생활 속 절약만으로 이 구조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베란다 난간형 태양광 설치 등이 한계를 보완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구 달서구의 한 빌라형 아파트 베란다에 태양광 모듈이 설치된 모습. 영남일보DB
◆ 이제는 '에너지 생산구조' 고민할 때
전문가들은 규제나 절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국가적인 에너지 안보와 생산구조의 체질 개선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황진주 교수(소비자학과)는 "지금의 절약 지침은 왜 필요한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소비자별 생활조건 차이도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교수는 "시민이 왜 절약에 동참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1인 가구와 다인 가구, 도심과 외곽 거주자는 에너지 사용방식 자체가 다르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지침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구조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실장은 "에너지 위기는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급망이 한번 흔들리면 그 중요성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전환과 안보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꾸준히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에너지 정책은 결국 '비용과 속도의 함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이 절약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려 했다면, 그만큼 전기차 보급과 인프라 확충 등에 더 큰 비용을 감수했어야 한다"며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우리 에너지 구조의 취약점을 점검하고, 전환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시웅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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