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있어도 받을 인력 없다”…저출산 맞춤형 ‘축소 운영’이 불러온 수용 절벽
사법 리스크에 멍드는 필수의료…“법적 보호와 공적 지원 없인 시스템 유지 불가”
대구가톨릭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센터에서 정지은 교수가 아이들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을 담아 손을 귀에 대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에서 고위험 임신부가 제때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쌍둥이 중 한 명을 잃고, 다른 한 명도 뇌손상을 입은 사고<영남일보 4월8일 1·10면 보도>는 지역 고위험 분만 체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병원 간 연락망이나 이송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정작 환자를 받아낼 산과·신생아 인력과 병상, 장비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은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모아센터장)는 8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위험 산모는 산모 한 명만 보는 진료가 아니다. 수술실과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때로는 산모 중환자실까지 동시에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송 체계를 아무리 촘촘히 짜도 현장에서 받아낼 수 있는 수용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고의 본질을 '구조적 미스매치'로 진단했다. 저출산이 장기화하면서 산과와 신생아 진료 인력이 급감했고, 병원들도 그에 맞춰 축소 운영해 왔는데, 최근 출산이 다시 늘면서 현장의 대응 여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출산은 계절적 편차가 큰 분야여서 환자가 적을 때와 몰릴 때 차이가 상당하다"며 "환자가 많은 시기에 맞춰 병상과 인력을 유지하면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적은 시기에 맞춰 운영하면 정작 급할 때 수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출산 수요가 몰릴 때도 여유 병상과 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이 있었어야 했는데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고위험 산모 이송이 일반 응급환자 전원과 다른 점도 분명히 짚었다. 산모 상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태아 또는 미숙아 치료까지 동시에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조기 분만이나 응급 제왕절개가 예상되면 수술실 가동이 가능해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NICU에서 처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산후 출혈 같은 변수까지 감안하면 산모를 위한 중환자 치료 여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대학병원급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대응 자체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구의 의료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냐는 질문에는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고 했다. 병상이나 장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는 "저희도 올해 초 신생아 환자가 급증해 병상을 37개에서 42개로 늘렸지만, 실제 수용 여부는 인력에 달려 있다"며 "산과 전문의가 부족해 못 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병원은 반대로 산과는 되지만 신생아를 볼 의사가 없어 수용하지 못하는 식의 불균형도 크다"고 말했다.
신생아만 따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방식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 정 교수는 "출생 직후 미숙아를 분리 이송하는 것은 생존율을 떨어뜨리고 합병증 위험도 키울 수 있다"며 "가능하면 산모와 신생아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재발 방지책으로는 '법적 보호'를 가장 먼저 꼽았다. 필수의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마저 과도한 민형사상 책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인력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산과나 신생아 진료를 택한 의사들은 처음부터 금전적 보상을 보고 이 길에 들어온 건 아니다"라며 "그런데 지금은 아이나 산모 상태가 나빠지면 의료진이 곧장 소송 위험에 노출되는 분위기여서, 현장에서는 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당장 필수의료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다"며 "법적 안전장치가 있어야 그나마 현장의 수용 여력을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로는 인력 보호와 함께 장비·시설 유지에 대한 안정적 지원을 주문했다. 평소에는 가동률이 낮더라도, 환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시기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여유 자원을 유지하도록 공공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 교수는 "인공호흡기 같은 장비도 환자가 많을 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을 때는 놀 수밖에 없다"며 "이런 분야를 병원에만 맡겨두면 결국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대학병원이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책임 있게 보려면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전제로 의료진이 과도한 법적 부담 없이 진료할 수 있다는 신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교수는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치료에서 결국 성패를 가르는 것은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지난해 12월 출생 체중 328g, 재태기간 26주인 초극소 저체중아를 191일간 치료해 건강하게 퇴원시킨 사례가 있다.
당시 산전 컨설팅부터 1대1 전담 간호, 365일 교수 당직 체계까지 병원의 모든 역량이 투입됐다. 정 교수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선택과 이를 뒷받침할 체계가 있을 때 가능한 결과"라고 설명 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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