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논설위원
# 이병철의 미래 통찰=1983년 2월 도쿄 오쿠라호텔. 74세의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글로벌 삼성'의 초석을 놓는 순간이었다. 반응은 냉담했다. 심지어 인텔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미래산업의 쌀' 반도체를 확신했다. 만약 그날의 '도쿄 선언'이 없었다면? 상상에 맡긴다.
'이병철 선언'은 한국 기업 100년사의 퀀텀 점프 순간이다. 2020년 전경련이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6·25 전쟁 발발 후 70년 한국 산업사의 최대 업적으로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64.2%)을 꼽았다.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계획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지금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미래 통찰'은 적확했다.
# 기사회생 하이닉스=SK하이닉스의 역정은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한 땐 '동전주'로 불리며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던 궁박한 처지였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은 1983년 현대그룹이 설립한 현대전자. 순항하던 현대전자는 1997년 외환위기와 정부 주도의 '빅딜' 악재를 맞는다. 3조5천억원의 부채까지 떠안은 LG반도체 인수로 유동성 위기가 닥친 것. 2001년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꾸고 쇄신을 시도했지만, 그해 1조9천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결국 하이닉스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미국 마이크론과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사회와 노조가 독자생존에 뜻을 모으며 매각을 부결시켰다. 당시 논설위원이었던 필자도 '하이닉스 스스로 살길 찾아야'(영남일보 2002년 5월 1일자) 사설로 헐값 해외매각을 반대했다.
하이닉스 주가는 2003년 3월 감자(減資) 직전 135원까지 추락했다. 변곡점은 2012년 SK그룹 편입이다. 대규모 투자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때맞춰 반도체 업황이 살아났다. 주가도 파죽지세. 이제 '황제주' 칭호를 받는다. '화수분' 하이닉스 인수는 SK의 신의 한 수였다. 현대차의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와 함께 '현자(賢者)의 M&A'로 꼽힌다.
# K-반도체 나비효과=삼성전자의 올 1분기 실적은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원. 미답의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애플, 엔비디아와 함께 영업이익 '글로벌 빅3'에 명함을 올렸다. SK하이닉스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했다. 하나증권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37조원이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를 327조원, 내년 488조원까지 전망한다. 어쩌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이 정부 본예산(올해 728조원)을 넘어설지 모른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서버 투자에 따른 메모리 수요 폭증이 K-반도체 전성기를 열었다. "컴퓨팅 수요의 기하급수적 증가"(젠슨 황 엔비디아 CEO) "3년 후 테슬라의 제약 조건은 반도체 부족, 그중에서도 메모리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당분간 메모리 수요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팻 겔싱어 전 인텔 CEO). 범용 D램 제품인 DDR4 8GB 가격은 작년 2월 1.35달러에서 올해 13.0달러로 1년 새 863% 폭등했다.
수출도 '반도체 효과'를 흠씬 누린다. 지난 3월 우리나라 수출은 861억달러. 작년보다 48% 급증하며 월간 기준 800억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코스피 6000' 역시 반도체 덕분이다. K-반도체의 날갯짓, 그 자장이 어디까지 뻗칠까. 논설위원
삼성 반도체 진출 '도쿄선언'
한국 기업사 퀀텀 점프 순간
영업이익 미답의 영역 진입
위기 하이닉스 이제 '화수분'
올해 3월 수출도 역대 최대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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