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413028006262

영남일보TV

  •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채운 참가자들의 향연 ··· 제19회 영남일보 국제 하프 마라톤 대회 현장
  • “다 타버린 줄 알았는데”…산불 이후 고운사에 다시 온 봄

[기획 르포 -독도항로와 생태기록①] “버티던 것도 무너진다”… 독도 절벽에서 본 식물의 경고

2026-04-13 19:01

‘섬기린초’ ‘해국’ ‘쑥부쟁이’ 등
바람과 염분을 이겨온 생존 전략이
기후와 사람의 발걸음에 위협받다

독도 전경. <홍준기 기자>

독도 전경. <홍준기 기자>

대한민국 최동단 영토인 독도는 동해 생태계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화산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해양쓰레기, 그리고 지리적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자연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영남일보는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어지는 항로를 시작으로, 독도의 지질과 생태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기획 취재를 시작한다.


2026년 봄, 그 섬은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 지난 4일 다시 찾은 독도는 배가 닿기도 전에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섬에 발을 딛자마자 몸이 한쪽으로 기울 정도의 바람이 몰아쳤다. 아래에선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위에선 바람이 식물을 짓누른다.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하루를 버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독도 절벽에는 섬기린초·쑥부쟁이 등 희귀 식물이 서식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말라 가고 있다. <홍준기 기자>

독도 절벽에는 섬기린초·쑥부쟁이 등 희귀 식물이 서식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말라 가고 있다. <홍준기 기자>

절벽을 따라 시선을 내리면, 바위 틈마다 초록이 박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좀 전과는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푸른 잎 아래로 길게 늘어진 갈색 줄기들. 이미 말라버린 흔적이 더 길다. 그래도 식물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뿌리를 옮기는 대신 몸을 낮추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섬기린초는 한국 특산종으로 섬 생태계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 역할을 한다. 두툼한 잎에 물을 저장하는 이 식물은 바람이 강할수록 키를 낮추고 옆으로 퍼지는 특징이 있다. 서로 엉키듯 군락을 이루는 것도 이유가 있다. 바람을 나눠 맞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군락의 가장자리부터 비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살아 있는 중심부만 남고, 바깥쪽부터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도 바위틈에 뿌리 내린 섬기린초(왼쪽)와 지구상 유일하게 독도에 자생하는 쑥부쟁이. 이상기후와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쑥부쟁이 등 독도 식물이 말라 누렇게 변해 있다. <홍준기 기자>

독도 바위틈에 뿌리 내린 섬기린초(왼쪽)와 지구상 유일하게 독도에 자생하는 쑥부쟁이. 이상기후와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쑥부쟁이 등 독도 식물이 말라 누렇게 변해 있다. <홍준기 기자>

이어 발견된 것은 지구상에서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인 쑥부쟁이다. 절벽 끝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빈틈을 메우는 식물로 유명하다. 씨앗을 멀리 날려 빠르게 자리 잡는다. 하지만 요즘은 꽃이 피는 시기가 들쭉날쭉해 어떤 해에는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울릉도와 독도의 햇볕이 잘 드는 암벽이나 경사진 곳에서 자생하는 해국은 바닷바람에 강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두꺼운 잎과 짧은 줄기로 염분을 견디는 데 특화돼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꽃 수가 줄고 개체가 작아진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독도 식물은 원래부터 혹독한 환경을 전제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조건이 다르다. 경북대 추연식 교수(생물학과)는 "독도의 식물들은 강한 환경엔 익숙하다. 문제는 '계속 바뀌는 환경'이다. 기온 상승에 따라 계절 흐름이 흔들리면 식물은 타이밍을 놓친다"고 설명했다.


(좌) 독도 강수량 변화 추이 그래프, (우) 독도 기온 변화 추이 그래프. <홍준기 기자>

(좌) 독도 강수량 변화 추이 그래프, (우) 독도 기온 변화 추이 그래프. <홍준기 기자>

실제로 최근 20년 사이 독도 주변 기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온은 꾸준히 오르고, 비는 줄었다. 뜨거워지면서 동시에 말라가는 기후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 변화는 바위틈에 의존하는 식물에 치명적이다. 물을 저장하는 능력보다 잃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건 '완전히 죽은 개체'가 아니라 '반쯤 말라 있는 식물'이다. 줄기 절반은 갈색으로 변하고, 나머지 절반만 겨우 살아 있다. 회복할 시간 없이 계속 소모되는 상태다.


여기에 외래종 문제도 조용히 번지고 있다. 독도는 접근이 제한된 지역이지만, 사람과 물자를 통해 종자가 유입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실제 일부 구간에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초본류가 확인된 사례가 보고됐다. 임장원 독도관리사무소장은 "외래종은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번식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토착 식물이 약해진 틈을 파고든다"며 "특히 지금처럼 환경이 불안정할 때 더 위험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섬기린초 군락을 이뤘던 독도 해안가가 지금은 띄엄띄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홍준기 기자>

섬기린초 군락을 이뤘던 독도 해안가가 지금은 띄엄띄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홍준기 기자>

문제는 외래종이 단순히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 식물의 자리를 빼앗고, 토양환경까지 바꿔 결국 원래 있던 종은 더 밀려나게 된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임 소장은 "독도는 건드릴수록 균형이 깨지는 곳이다. 복원도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외래종 유입 차단(입도 시 장비·신발 종자 제거), 방문객 동선 제한, 장기 생태 모니터링 강화, 인위적 식재나 복원사업 최소화 등의 방식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만난 독도관리사무소 직원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문준(52) 독도 안전지도원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식물은 줄어든다"며 "밟히는 것도 있지만, 씨앗이 들어오는 게 더 문제"라고 우려했다.


절벽 위 식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에 잎을 흔들며 같은 자리에 붙어 있다. 예전에도 버텨왔고, 지금도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버팀의 무게는 분명 달라졌다. 독도의 식물은 지금, 조용하게 한계를 넘고 있다.



기자 이미지

홍준기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북지역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