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다.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큰소리 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도 두었던 특별감찰관을 자신의 약속을 어겨가면서까지 5년 내내 임명하지 않은 위선을 저지른 것에 비추어 볼 때에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부인 김건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그런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5월10일 대통령 취임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윤석열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이후 분위기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8월 들어 어느 무속인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사칭해 세무조사나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 부부가 살게 될 서울 한남동 관저 공사에 김건희와 관련 있는 업체가 참여했는데, 친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별감찰관부터 서둘러 임명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윤석열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2023년 7월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나는 이 지면에 썼던 "도대체 특별감찰관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김건희 리스크'는 사실상 '윤석열 리스크'다. 윤석열은 자신 때문에 아내와 처가가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애처가다. 그래서 김건희와 처가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패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왜 무서운 공적 엄중함을 요구하는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는 손 흔드는 의전에만 만족할 뿐 대통령을 잘해볼 뜻은 없는 걸까?"
윤석열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더라면 그가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처럼 패가망신하고 국익을 크게 훼손하진 않았을망정, 문재인도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더라면 이른바 '김정숙 옷값 의혹'으로 4년 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불명예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숙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로 고가의 의상을 구매했다는 혐의(업무상 횡령, 국고손실 등)로 2022년 3월 고발된 이 사건은 지난 3월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지만, 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아예 의혹 자체가 제기되지 않게끔 막을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정말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권력을 갖기 전엔 뭐든지 다 투명하게, 그 어떤 감시와 통제도 다 감당하겠노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왜 권력만 갖게 되면 그렇게 달라지는 걸까? 대통령 이재명도 이 의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대선 공약집에서 "특별감찰관 즉각 임명 및 실질적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2025년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선 국회에 특별감찰관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밝히면서 "권력은 권력을 가진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견제를 받는 것이 좋다"며 "되게 불편하겠지만 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다.
4개월 후인 11월14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태훈은 "만약 특별감찰관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특별감찰관 임명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김건희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시라도 빨리 특별감찰관 임명을 위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특별감찰관은 9년째 공석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2025년 12월2일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 김남국이 민주당 의원이자 중앙대 선배인 문진석에게 인사 청탁을 받고 "훈식이 형(강훈식 비서실장)이랑 현지 누나(김현지 제1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문자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 터졌다. 이에 거의 모든 언론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부르짖고 나섰지만, 해가 바뀌어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고 3월이 지나고 4월도 절반이 지난 시점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그제 일요일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개시해줄 것을 국회에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잘한 일이긴 한데,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2025년 7월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지난 9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국회가 대통령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는 만용을 저지를 수 있었단 말인가? 야당이 찬성하건 반대하건 다른 일들은 다 전광석화처럼 해치운 정부여당이 어쩌자고 이 문제만큼은 이렇게까지 질질 끌었는지 그 이유를 밝혀줘야 믿음이 갈 게 아닌가 말이다.
정부여당은 아무런 말이 없으니 일단 야당의 말이라도 들어보자. 국민의힘 원내대표 송언석은 대통령의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 개시 요청을 두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양동작전 쇼'의 재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이미 여러 차례 특별감찰관 추천을 하자고 여당에 제안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며 "청와대는 특별감찰관 추천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고 민주당은 추천을 거부하는 '양동작전 쇼'가 벌써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특별감찰관 추천을 촉구하는 청와대의 뜻을 존중하고 환영한다"고 했으니, 이번만큼은 여야 합의하에 특별감찰관제가 가동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특별감찰관은 법에서 명시한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건 권력의 타락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다. 권력감은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권력자의 의지만으론 타락을 막아내기 어렵다. 우리 모두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이 제시한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명심하는 게 좋겠다.
"권력이 강할수록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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