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선생님, 저는 지금 남쪽 바닷가에 와 있습니다. 수평선에서부터 밀려온 파도가 먼 길을 달려 바로 발밑에서 찰랑입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밀려가는 것이 세상의 순리일 것인데 오늘은 바다의 이 모든 움직임조차 낯설고 그립고 아득합니다. 수레바퀴 같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노트북 하나만 달랑 싣고 달려왔는데 두고 온 그곳 또한 그립습니다. 겨우 두 시간여 달려온 가까운 곳이지만 며칠 간의 일탈을 위해 설렜던 시간도 잠시, 나오기 전에 뒤돌아 보이던 익숙한 내 집의 공기와 가구들, 아이 방에 한참을 서 있었던 제 모습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멀리 드문드문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이는 이곳의 햇살은 누가 마구 쏟아부은 것처럼 빛나고 또 위대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유리창에 비치는 햇빛은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치의 축복인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축복으로 수선화가 피고 사과가 영글고 바닷속 어린 물고기들이 자라나겠지요. 조회 시간, 앞에 선 친구의 머리 위에 빛나던 그 따뜻한 햇빛의 손길.
저물 무렵 바다는 또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빛깔로 수평선을 물들입니다. 숙소의 창 너머 바라보는 저녁 바다는 오래 스며들고 싶은 천 개의 빛깔로 거기 의연하게 저물고 있습니다. 날마다 피고 지는 이 신비한 우주의 시간들을 눈여겨 본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촉촉한 몇 편의 시를 쓰고 싶어서 출발한 길이었는데 저를 지배하는 이 모든 정황들이 저에게는 설레면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득해집니다. 생의 변두리에서 느끼는 이 지극한 감정은 언제부터 제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까요.
선생님, '사무치는 그리움을 적어 보낸다'는 오래전 보내주신 짧은 글을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체구에 유난히 맑은 눈을 가지고 계셨던 선생님. 언젠가 몇 명의 일행과 함께 선생님을 뵙고 돌아올 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간선도로에 서 계시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학과 위트로 쓰신 선생님 문장의 뒤편에는 언제나 어른거리는 그리움을 숨겨놓으셨지요. 선생님 계시는 그곳의 어린 날의 풍경과 황톳길, 그리고 스쳐 간 많은 사람들을 늘 그리워하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한평생을 사셨다는 것도요.
낮동안 쾌청하던 바다에 봄비가 내립니다. 멀리서부터 자욱해지는 바다 안개, 이 시간은 흐리지만 아득히 깊습니다. 이런 깊은 풍경 속에 제가 지금 머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입니다.
이 깊고 아득한 곳은 혹시 선생님이 평생을 그리워하시던 처소가 아니었을지요. 영원할 수 없으므로 영원을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면 선생님이 그리워하셨던 것은 혹시 한없는 대상, 한없는 빛깔, 한없는 사랑은 아니었는지요. 영원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사무치는 선생님의 그리움은 얼마나 슬프고 깊은 것이었을지 짐작합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답장을 드린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긴 답장을 드립니다. 저는 곧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오늘 이 젖은 바다와 선생님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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