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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창]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를 기다리며

2026-04-24 06:00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우리가 흔히 접하는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문구가 있다. 생명이 다하면 스러지는 화무십일홍의 꽃향기나 취기가 깨면 사라지는 술의 향기와 다르게 인간이 뿜어내는 덕성(德性)의 향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후세의 가슴속까지 스며든다는 뜻이다.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위인은 수없이 많으나,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 인향(人香)의 감동을 남긴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답을 구하는 과정 속에서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대개 이순신 장군을 23전 23승의 명장이나 탁월한 전략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중일기와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를 자세히 읽어보면, 진한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장수들이 자신의 전과는 부풀리고, 부하의 공은 누락시키거나 가로채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장계는 결이 달랐다. 자신의 공적은 간소하게 기술하였으나, 전장에서 피 흘린 부하들의 이름과 공적의 기록에는 추호의 소홀함도 없었다. '거북선 돌격장 이기남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었으며, 어영담은 물길을 정확히 읽어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제 몫을 다한 이라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 그 이름을 낱낱이 보고했다. 자신보다 부하들을 먼저 챙기는 따뜻한 마음, 성웅(聖雄)이라는 거대한 칭호보다 더욱 크고 빛나는 사람의 향기였다.


시선을 돌리면 의료계에서도 이와 닮은 사람의 향기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명의 동봉(董奉)의 일화는 시대를 초월한 인술(仁術)의 상징이다. 동봉은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는 대신, 중병을 고친 사람은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가벼운 병을 고친 사람은 한 그루를 집 주변에 심어달라고 요구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집 주변에는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니, 이것이 인술의 상징으로 쓰이는 '행림(杏林)'의 기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봉은 살구가 익으면 이를 쌀과 교환하게 하였고, 그렇게 모인 쌀을 흉년으로 굶주리는 백성과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의 의술은 질병 치료를 넘어 백성과 함께하는 구휼(救恤)로 이어졌다. 동봉이 남긴 사람의 향기는 살구꽃 향기보다 진했고, 그가 실천한 애민(愛民)의 정신은 숲보다 깊었다.


이들은 국적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며 분야가 달랐지만,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사욕과 권위를 내려놓고 타인에 대한 지극한 예우와 사랑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갖춘 위인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자 행복이었을 것이다.


이제 눈을 돌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 본다. 다가올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나라와 지역을 구할 적임자라며 소리 높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현란한 수사(修辭)와 공약은 화사한 꽃향기처럼 달콤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두렵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그 꽃이 지고 난 뒤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당선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잠시 풍기는 인위적인 향기는 결코 만리를 갈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디 화향이나 주향처럼 일시적인 유혹에 현혹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부하의 전공으로 가득했던 장계와 일기를 남겼던 이순신 장군처럼, 살구나무숲을 이루어 백성을 구휼했던 동봉처럼, '사람의 향기' 가득한 지도자가 뽑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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