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감시하는 장(腸) 속 파수꾼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면 국물은 짜니까 면만 먹자고 다짐하지만, 결국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마신 뒤 포만감과 함께 밀려오는 후회에 괴로워합니다. 이처럼 '짜게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건강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금의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대비하는 놀라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26년 4월, 과학 잡지 '네이처(Nature)'에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피아리 센굽타(Piali Sengupta) 교수 연구진이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이라는 아주 작은 벌레를 이용해, 장(腸) 속 단 하나의 신경세포가 소금을 감지하고 온몸을 소금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특히 이번 연구를 주도한 연지혜 박사는 우리 대구에 위치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라 더 반갑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눈에 보이지 않는 1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벌레이지만, 신경세포 구조가 단순하고 명확해, 오래전부터 뇌과학자들이 즐겨 연구하는 모델 생물입니다. 특히 사람의 장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와 놀랍도록 유사한 신경망을 소화기관에 갖추고 있어, 이번 연구의 핵심 모델로 선택되었습니다. 장신경계란 뇌와 별도로 장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신경 시스템을 말합니다. 뇌와 장이 서로 긴밀하게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뇌-장 축(Brain-Gut Axis)' 연구는 최근 전 세계 뇌과학계에서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인데, 장에는 수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해 '제2의 뇌'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번 연구는 바로 그 최전선에 놓인 발견입니다.
연구팀이 밝혀낸 주인공은 'I3'라는 이름의 신경세포입니다. 이 세포는 소화관 안으로 튀어나온 특수한 감각 끝부분에 'GLR-9'와 'GLR-7'라는 두 가지 수용체 단백질을 갖추고, 음식과 함께 들어온 소금 성분을 직접 감지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경세포가 단순히 '짜다'는 신호를 뇌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I3가 소금을 감지하면 두 가지 경로로 온몸에 명령을 내립니다. 갑작스럽게 고농도 소금에 노출되는 급성 상황에서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로 즉각 대응하고, 서서히 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는 'FLP-6'라는 신경 펩티드를 분비해 피부와 장의 유전자 발현 방식까지 바꿔놓습니다. 쉽게 말해, 몸이 짠 음식에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적응하는 두 가지 전략을 장 속 신경세포 하나가 총지휘하는 셈입니다. 특히 I3는 소금 성분인 양이온에만 반응하고, 같은 농도의 설탕이나 글리세롤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소금을 향한 전용 감지 시스템인 셈이죠.
연구진은 이를 직접 증명하기 위해 I3 신경세포를 망가뜨린 돌연변이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실험도 수행하였는데, 설탕 등 다른 고농도 용액에서는 정상적으로 살아남으면서도 유독 고농도 소금 환경에서만 빨리 마비되고 사망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삼투압이 높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소금만을 특이적으로 감지하는 전용 신경 경로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 몸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게 소금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짠 음식을 꾸준히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혈압만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유전자 발현과 신경 반응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짠 음식을 즐기는 우리 식문화, 한번쯤 되돌아볼 이유가 생긴 셈입니다. 둘째, 장은 그저 소화만 담당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뇌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리 몸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제2의 뇌'입니다. 뇌-장 축 연구는 앞으로 비만, 당뇨, 우울증 등은 물론 치매까지 다양한 질환과의 연관성을 더 깊이 밝혀낼 것입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국이 올라온다면, 여러분의 장 속에서 파수꾼으로 열심히 수고하는 신경세포를 떠올리며, 습관처럼 들어올린 소금통을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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