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닌, 네안데르탈인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뼈가 굵고 튼튼했다. 뇌 용량이 더 큰 것은 물론이고, 근육 또한 더 많아 사냥에 유리했다. 빙하시대를 견디기에도 그들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들은 사라졌고,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됐다.
1950년대, 드미트리 벨랴예프를 비롯한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은여우 길들이기'라는 특별한 실험에 착수한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실험은 야생 동물이 어떻게 가축화될 수 있는지를 유전학 관점에서 밝힌 연구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야생의 은여우들 중에서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먼저 다가오거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개체만을 골라 교배를 반복했다. 지능·외모·크기 등 다른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친화력만을 기준으로 번식을 시킨 것이다.
이 실험이 유전학에 있어 기념비적 연구로 인정받고 있는 건 바로 실험 결과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불과 몇 세대 만에 여우들에게서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귀가 강아지처럼 아래로 처지며, 꼬리는 위로 말리기 시작했다. 주둥이는 짧아지고 이빨은 작아졌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낮아졌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수치는 높아졌다. 번식주기 또한 잦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도를 읽으며 교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여우가 아니었다.
이를 두고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자신들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생존과 번식에 있어서는 신체적인 강함보다 친화력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친화력을 선택한 늑대들은 개들의 조상이 돼 지금 우리 곁에서 다정한 친구로 살아남았지만, 야생 늑대들은 이제 거의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친화력이 높은 짐승들이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한 것처럼,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 이론'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신체는 약했지만,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은 훨씬 더 강했다. 우리는 문제 해결과 위기 극복을 위해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과도 기꺼이 손잡을 수 있었고, 협력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길들일 줄 알았다. 공격성을 줄이고, 친화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다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은 다정함이었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눈에 흰자위가 유독 뚜렷했다. 그래서 내가 어디를 보는지 즉시 타인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언어가 없어도 상관없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이미 그 눈 속엔 다정함이 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이 우리를, 우리의 세계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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