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성장의 기회’…결국 생존 위해 서울행
데이터로 본 대구의 인구·청년·일자리 지표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은수(가명)씨가 자신이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 살게 된 이유를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노진실 기자
상경(上京). 지방에서 서울로 간다는 의미다. 모든 것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온 우리나라에선 비수도권 지역민들에겐 '중요한 일'을 위한 상경이 당연시돼 왔다. 잠시, 혹은 영구적으로 서울·수도권행을 선택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보면 지역이 당면한 현실, 문제점도 좀더 현실감있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나는 왜 서울시민이 됐나'
"일자리,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서울로 향했어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은수(40·가명)씨. 그는 '왜 상경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은수씨가 태어난 곳은 경북이고, 대구에서 미술대학을 나왔다. 15년 전 고향을 떠날 당시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대 나이였다.
"대구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는데, 전공을 살려 일할 곳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당시 취업난이 심각했는데 대구엔 더 일자리가 없었다. 고민하다 대학 친구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은수씨는 지금도 동대구역에서 가방 하나 메고 서울행 기차를 타던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주거 안정을 찾을 때까지 서울 강서구와 영등포구 등지에서 여러 번 거처를 옮겼다. 그때마다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도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고 했다.
"서울에서 얻은 첫 일자리는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그게 이곳에선 꽤 쓸모 있는 경력이었다. 전공 관련 경력을 차곡차곡 쌓은 뒤 서울의 한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연봉 수준은 대구보다 높아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그때 내가 대구에서 취직했다면, 연봉은 이곳에서 받는 절반 수준밖에 못 받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힘든 서울생활을 버틴 것은 '연봉'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시가 서울이었다. 이 나라에선 서울이 '기회의 땅'으로 인식돼 있어서다.
"돈을 떠나 대구경북에는 일자리 선택 폭이 너무 좁았다. 서울이 경쟁은 치열해도, 그만큼 일자리 종류가 다양하고 기회도 많았다. 반면, 대구에 남은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여기선 공무원이 아니면 살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내 경력으로 대구에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고향에선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어느덧 서울에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러운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생이별이 힘들었다. 몇 해 전 고향에 홀로 있는 어머니 건강이 악화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했는데, 서울과 대구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어머니 혼자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때는 내 처지가 너무 싫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녔다면 엄마 옆에 내가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엄청 울었다."
'대구를 떠난 것을 후회하느냐'라고 물으니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서울에 태어나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다. 그런데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은수씨는 쓴 웃음을 지었다.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일자리와 살길을 찾아 대구를 떠나 상경한 이들에겐 '서울행 열차'의 서글픈 추억이 남은 장소다. 노진실 기자
3년째 서울에 사는 최효진(37·가명·마포구)씨는 이직(移職)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왔다고 한다. 대구에서 대학(사회과학계열)을 나온 효진씨는 상경 전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10년간 사무직으로 일했다. 효진씨는 30대 중반에 고향과 가족을 떠났다.
"회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구에서 다니던 회사는 10년 근속을 해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직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또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이 발전하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는데, 대구에선 그게 힘들었다."
효진씨는 대구가 매력과 장점이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정체된 도시 경제와 직업 환경, 제한된 기회는 그 장점을 상쇄시킨다고 했다. 그 또한 서울행을 후회하지 않았다.
"서울 집값이 비싸고, 경쟁도 너무 치열하고, 대구에 비해 생활이 팍팍한 것은 맞다. 하지만, 대구에 있을 때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서울에선 내가 더 성장하고 많이 배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 전문성과 커리어를 키워갈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게 서울 생활의 가장 큰 장점 같다. 자존감도 더 올라갔다. 서울 생활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앞으로도 대구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대구시 청년 인구 추이(자료-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인포그래픽=생성형 AI>
19~29세 청년 인구 순이동 지역별 현황(자료-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그래프=생성형 AI>
◆데이터로 본 대구의 인구·청년·일자리
인구·청년·일자리. 대구에서 이 세 가지 지표는 모두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우선 대구 인구는 꾸준히 감소세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확인한 결과, 2025년 말 기준 대구 인구는 235만3천3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만597명 쪼그라들었다. 최근 5년간 대구 인구는 2023년 7월 군위군 편입으로 한 차례 증가한 것 외에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실제 2021년 238만5천412명에서 2022년 236만3천691명으로 줄다가 2023년에는 237만4천960명으로 반짝 늘었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하향곡선이다.
인구 감소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대구 인구는 향후 5년간 연평균 0.8%씩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2030년엔 224만2천명까지 곤두박질 칠 것으로 전망됐다.
인구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 연령대는 20대다. '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자료를 보면, 지난해 대구시 청년인구는 2020년 대비 12.3% 감소한 56만3천961명으로 파악됐다. 대구는 타 지역 대비 청년인구 감소율이 큰 편이었다. 전국 평균 청년인구 감소율은 9.5%인데, 대구 감소율은 12.3%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교육 및 취업준비가 필요한 20대를 중심으로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구의 연령별 인구 추이를 보면, 19~24세 청년은 2020년 18만7천392명에서 2025년(7월) 13만9천101명으로, 5년 새 5만여 명이 줄었다.
19~29세의 청년인구 순유출(2024년 기준)은 8개 특·광역시 중 대구가 가장 많다. 같은 해 청년 인구 순이동은 대구가 6천41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광주(4천182명), 부산(3천983명), 울산(1천503명) 등의 순이었다. 대구 20대의 순이동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3천529명), 경기(2천71명)였다. 이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과 '교육'이 꼽혔다.
대구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이유(자료-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그래프=생성형 AI>
대구 청년들의 수도권 이주 목적(자료-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그래프=생성형 AI>
청년들에게 대구의 일자리 환경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대구는 전국 평균 대비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았다. 2024년 청년층 전체(19~39세)의 월 평균 임금은 265만2천원으로 전년 대비 18만3천원 증가했다. 하지만 전국 평균(297만7천원)보다는 30만원가량 적었다. 특·광역시 평균(304만1천원) 대비 4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 조사에서 지역청년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싶은 이유로 '더 나은 일자리'(45.8%)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어 '더 나은 문화환경'(15.8%), '더 나은 주거환경'(14.5%) 등의 순이었다.
또한 수도권에 거주하게 된 대구 청년들의 상당수가 '더 나은 일자리'(37.2%)를 위해 대구를 떠나게 됐다고 답했다. 수도권 생활의 어려움으로는 83.6%가 '주거비·주택 마련'(45.9%)과 '높은 물가·생활비 부담'(37.7%)을 꼽았다.
청년들이 느끼는 대구의 직업 및 일자리 관련 문제점으로는 다양한 일자리·기업 부재(29.8%), 낮은 급여수준(28.7%), 큰 기업체 부재(25.1%) 등이 꼽혔다. 출향 청년들이 대구행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도 '안정적인 일자리(취업) 확보의 어려움'(48.9%)으로 파악됐다.
전문가 제언 "일자리와 문화 충족되면 청년들 대구 머무를 것"
박경숙 대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경제와 산업, 문화 등 인간 삶에 필요한 많은 것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요. 이 때문에 지역의 청년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떠밀리듯 서울·수도권으로 떠나는 일이 고착화돼 있습니다."
'제3차 대구시 청년정책 기본계획'의 연구책임자인 대구정책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 박경숙 연구위원(사진)의 말이다.
박 연구위원은 "지역 청년들을 조사해보니, 가장 놀라웠던 것이 대구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정주 의사가 생각보다 높았다는 것"이라며 "정주 의사가 있다는 답변이 50%를 넘었다. 이는 정주 요건이 충족되면 대구에 정주할 청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대구에 정주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왜 정주하지 못하고 서울·수도권으로 이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으로 '일자리'를 꼽았다. 그는 "대구 청년들 상당수가 일자리 문제로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싶어 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어쩔 수 없이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구에는 대기업도 없고, 다양한 직종에서 활발히 채용이 진행되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희망을 찾기 힘든 것 같다"고 했다.
대구 청년은 더 나은 문화 환경에 대한 의향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청년들은 문화·여가·관광 등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지역의 환경을 수도권 보다 불편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며 "일자리 만큼이나 매력적인 정주여건도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대구를 떠난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는 도시를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그는 "청년들이 반드시 서울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부가 여러 균형발전 관련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대구도 정부 정책과 연계하면서 인근 경북과도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며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해 대구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만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빨리 진행이 돼 대도시로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지역의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정책의지도 함께 투영돼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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