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예 정치공동체 폴티 대표
선거에 출마해 경제를 말하지 않는 정치인은 드물다. 먹고사는 문제는 유권자에게 합리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러나 정치인이 약속하는 공동체는 경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는 삶의 조건이지, 삶 그 자체는 아니다. 힘든 시절을 함께한 친구에게 형편에 맞지 않는 축의금을 건넨다. 여윳돈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근사한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몸이 불편한 친구와 걸을 때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춘다. 당장의 수입이 없어도 공익적 가치라 믿는 일에 잠잘 시간을 쪼갠다. 경제가 좋아지고 소득이 늘어나면 선택의 폭은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경험과 감각은 경제적 손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은 결국 관계와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바야흐로 '딸깍'의 시대다. AI로 버튼 한 번, 클릭 한 번이면 많은 일이 가능하다. 그만큼 노동의 가치와 역할도 빠르게 재편된다. 일이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삶의 기반은 오히려 더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경제를 넘어서는 영역이 필요하다. 잠깐 머물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환대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그것을 담아내는 환경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역을 깊이 읽고 공동체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정치와 정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대구나 광주처럼 '일당우위체제' 지역에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려면 여야가 교체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 가능한 정치적 토양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정당과 시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를 중심에 둔 커뮤니티와 세미나, 토크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정당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정당 간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조정되는 경험을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일부 개인의 노력에 기대고 있을 뿐 지속 가능한 구조로 이어지지 못한다. 대구에는 정치와 관련한 산업도, 시장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동체의 영역을 다루는 정치가 절실하지만 그 정치를 지속할 기반이 없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정치 자체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자리다.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는 정치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직업 형태로 구현되어야 한다.
첫째, 지방의회 입법·의정 지원 일자리다. 의원 보좌, 정책 연구, 예산 분석, 입법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지역 의회에도 실질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정당 전략·조직 운영 일자리다. 정책 기획, 조직 관리, 당원 교육을 담당하며 정당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인력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셋째, 민간 정치·민주주의 생태계 일자리다. 연구소, 교육기관, 커뮤니티, 스타트업 등에서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제도권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가능성의 도구다. 지역에서 정치를 말하는 일을 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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