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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윤일현의 ‘밥상과 책상 사이’…오월의 훈풍에 띄우는 서툰 사랑의 고백

2026-05-01 06:00

오월의 훈풍에 띄우는 서툰 사랑의 고백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장미 만발한 오월의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우리는 이 계절을 '가정의 달'이라 부르지만, 정작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는 끝내 묻지 않은 채 지나간다. 그 눈부신 투명함 앞에 서면 굳어 있던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고, 평소 쑥스러워 삼켰던 말들이 입술 끝에 고인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는 선물을 건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나 꽃다발보다 더 오래 남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 곁을 지키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건네는 말 없는 뭉클함이다.


오늘날 부모로 산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경주와도 같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법,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가르치느라 부모 자신의 마음은 쉽게 지쳐간다. '나는 과연 좋은 부모일까?', '내 부족함 때문에 아이가 힘들고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은 밤마다 찾아오는 익숙한 손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 치열한 마음의 한복판에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아이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 인간적인 마음이다.


가정은 과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긴장된 작업실이 아니다. 친숙함과 무심이라는 투박한 모서리에 찔려 아파하기도 하면서, 그 빈틈을 온기로 메우며 함께 견디는 자리다. 세상은 끊임없는 숙제로 우리를 압박하고 평가하지만, 가족은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하는 공동체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사소한 일로 섭섭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결국 다시 돌아가게 되는 이유는 그 관계가 쉽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나 자녀 모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부족함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 자세를 다잡게 하는 삶의 에너지다. 가족은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그 기적은 '완벽하지 않음'을 기꺼이 껴안는 데서 빛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그 삶의 궤적을 통해 배운다. 훈계보다 더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가 하루를 살아가는 뒷모습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훈을 들려주어도 사는 모습이 말과 다르면 아이는 결국 그 모습을 본받는다. 자녀 역시 부모의 완벽함이 아니라, 서툴러도 자기를 지켜주려 애쓰는 부모의 진심을 먹고 자란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 고단한 하루를 견디는 인내 속에서 아이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간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법,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은 함께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렇게 가정은 보이지 않는 배움의 성소가 되고, 부모는 자녀의 앞길을 비추는 고요한 등불이 된다. 자녀 양육에 온 생을 쏟고 있는 부모의 진실한 삶은 그 어떤 경구보다 강력하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고, 기쁠 때는 아이처럼 웃는 부모의 그 정직한 태도가 아이에게는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교육이 된다.


오월이 가기 전, 우리는 잠시 멈춰 서 보아야 한다. 더 빨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보폭을 확인하며, 지금, 이 순간의 눈 맞춤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강둑 길을 걸어보자.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며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 비 오는 날 창가에 나란히 앉아 빗소리를 듣는 시간도 좋다. 목적 없이 나누는 다정한 대화, 그 사소한 찰나들이 쌓여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해 줄 가장 강력한 추억이 된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아이는 자라며 부모의 어깨는 조금씩 낮고 좁아지겠지만, 함께 나눈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웃으며 시선을 나누던 저녁 식탁의 온기,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던 저녁의 평화, 서툴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던 대화들. 이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내면은 생의 난관을 견딜 단단한 성벽을 완성하고, 먼저 떠나간 이의 부재마저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부모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직면할 용기, 어떤 상황에서도 그 과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월의 햇살이 세파에 지친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따스하게 다독여 주기를 소망한다. 미안했던 마음은 내려놓고, 서운했던 감정은 오월의 훈풍에 녹여 날리자.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자녀들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아 보자. 애써 온 자신에게도 "참 잘해 왔다"라고 나직이 말해주자. 가정은 생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에 우리가 돌아갈 마음의 보금자리다. 누구의 삶이라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 모든 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오월의 눈부신 하늘 아래,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지나치고 있는 가장 조용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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