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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경주 나정리의 바다] 전설과 노래가 태어난 바다, 고래는 조용히 머물다 갔다

2026-05-01 10:54
나정고운모래해변. 이름처럼 모래가 곱다. 길이 500m, 폭 70m의 백사장이다. 모래유실을 막기 위해 수중 방파제를 설치해 백사장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나정고운모래해변. 이름처럼 모래가 곱다. 길이 500m, 폭 70m의 백사장이다. 모래유실을 막기 위해 수중 방파제를 설치해 백사장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길 가 정다운 집들의 담벼락에 고래와 물고기가 논다. 세라믹 조각으로 정성들여 만든 그림이 반짝반짝 한다. 해변 광장의 화강암 의자에도 고래가 새겨져 있다. 고래섬 카페가 있고 고래섬 횟집도 있다. 고요한 물빛 거리를 듬직한 체구의 청년 둘이 나란히, 씩씩하게 박자를 맞춰 달려 나간다. 어디선가 턴을 한 청년들이 반대방향으로 달려 멀리 사라진다. 헛 둘, 헛 둘, 혹 군인인가? 관광객은 절대 아니라는 확고한 느낌 때문에, 이 마을이 좀 젊게 느껴진다. 작은 어촌에서 젊은이를 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집 담벼락에 고래와 물고기가 논다. 옛날 나정리 앞바다에 고래들이 몰려들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조용히 머물다가 떠나곤 했다고 한다.

집 담벼락에 고래와 물고기가 논다. 옛날 나정리 앞바다에 고래들이 몰려들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조용히 머물다가 떠나곤 했다고 한다.

나정항은 소규모 배들의 작은 항구다.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3년 전 공사를 마쳤다.

나정항은 소규모 배들의 작은 항구다.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3년 전 공사를 마쳤다.

◆ 고래섬 마을의 나정항


나정항에도 고래가 있다. 조금 녹슬었지만 펄떡 솟구친 고래가 태양에 걸려 있다. 마을 유래를 적은 작은 안내판을 통해 나정항과 고래의 관계를 알게 된다. 나정항은 감포읍 나정2리에 위치한다. 마을은 약 400년 전 김해김씨가 개척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래전 마을 앞바다에 '말등섬'이라는 큰 바위가 있었고, 용으로 변한 신라의 문무대왕이 그 바위를 내리쳐 부숴버렸다고 한다. 이후 부서진 말등섬 주위로 고래들이 몰려들었는데 고래들은 마을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조용히 머물다가 떠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정2리는 '고래섬 마을'이라고 불린다.


나정항 일대는 수천 개의 테트라포드로 둘러싸여 있다. 파도의 힘이 얼마나 셌던 것이냐. 항구는 2020년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3년 전 공사를 마쳤다. 파도를 잠재우던 이안제 구간에 테트라포드를 추가로 설치해 보강하고 선양장을 정비하고 물량장도 더 넓혔다. 어구를 보관하는 창고도 생겼고 어부와 해녀를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고래섬 카페도 그때 생겼다.


항구에 열두 척의 배가 있다. 어구들은 저마다의 질서로 쌓여 있거나 부려져 있다. 배들은 삐걱대는 뒤척임 하나 없고, 주름진 내항은 차르르 물결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다. 이곳에서는 서대, 붕장어, 삼치, 성대, 문어, 쥐치 등이 난다. 특산물은 미역이고 해녀들이 소라, 전복 등의 해산물을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 고래섬 횟집에서 손님들이 나온다. 소나무 고목 사이로 그들의 상반신이 잠시 항구에 활력을 주었다가 사라진다. 고래섬 카페의 넓은 창에 한 사람이 비친다. 그녀는 홀로, 가만히, 항구를, 먼 바다를, 혹은 나를 바라본다. 바다는 강렬하고 잔혹한 파랑이다. 평생 두 번 고래를 보았는데, 그 바다가 꼭 저런 파랑이었다.


산책로 난간에 만파식적 이야기가 있다. 나정은 신라와 만파정을 합한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나무 산이 떠내려 온 바다가 이곳 나정리 앞바다라고 믿는다.

산책로 난간에 만파식적 이야기가 있다. 나정은 신라와 만파정을 합한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나무 산이 떠내려 온 바다가 이곳 나정리 앞바다라고 믿는다.

나정리 포장마차 촌인 신라의 달밤. 첨성대, 다보탑, 동궁원, 석가탑, 안압지, 이견대, 송대말, 반월성, 포석정, 월정교, 토함산 등 간판 이름에 경주의 멋진 곳들이 전부 모여 있다.

나정리 포장마차 촌인 신라의 달밤. 첨성대, 다보탑, 동궁원, 석가탑, 안압지, 이견대, 송대말, 반월성, 포석정, 월정교, 토함산 등 간판 이름에 경주의 멋진 곳들이 전부 모여 있다.

◆ 나정리, 만파식적과 신라의 달밤


항구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광장이고 쉼터다. 동남아풍의 커다란 파라솔이 벤치에 그늘을 드리운다. 작열하는 태양의 인상을 가진 이러한 소품은 확실히 이국적이다. 산책로 난간에 만파식적 이야기가 있다. 만파식적은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는 전설의 피리다. 신라 신문왕 때 동해안에 거북이 머리 모양의 산이 떠내려 왔다고 한다. 산에는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보배를 주려는 것이라 했다. 왕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나정리에는 만파정(萬波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만파식적을 얻은 것을 기념해 후세 사람들이 세운 정자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1920년대까지 여러 정각과 부속 건물이 보존돼 있었고 당시 초등학교 학생들의 교실로 사용되기도 했었다고 전해진다. 나정(羅亭)은 신라와 만파정을 합한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나무 산이 떠내려 온 바다가 이곳 나정리 앞바다라고 믿는다.


산책로 끝자락에는 포장마차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작은 가게들이다. 간판들이 반갑다. 첨성대, 다보탑, 동궁원, 석가탑, 안압지, 이견대, 송대말, 반월성, 포석정, 월정교, 토함산 등 경주의 멋진 곳들이 전부 모여 있다. 가게 앞 수족관의 해산물들은 모두 지역에서 난 것들이고 지역의 해녀들이 딴 것들이다. 모듬 해산물, 백고동 구이, 문어숙회, 조개구이, 굴찜, 바다가육지라면 등 집집마다 걸린 메뉴를 보니 약간 허기진다. 이곳 포장마차촌의 이름은 '신라의 달밤'이다. 커다랗고 노란 초승달과 작고 붉은 별이 거리간판을 귀염성 있게 장식하고 있다. 가까운 물거품과 진동하는 파도소리가 사위를 감싸는 밤, 포장마차의 불빛들 위로 덩실 초승달이 밝을게다.


나정고운모래해변 뒤로 솔숲이 100m 가량 긴 띠를 이룬다. 경주의 해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남아풍의 커다란 파라솔은 여름의 인상을 짙게 만든다.

나정고운모래해변 뒤로 솔숲이 100m 가량 긴 띠를 이룬다. 경주의 해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남아풍의 커다란 파라솔은 여름의 인상을 짙게 만든다.

◆ 나정고운모래해변


나정1리 마을을 지나면 '나정고운모래해변'이다. 주차장 초입에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애국지사 한송 김봉규 선생 공적비'다. 비석 앞 오석에 선생의 생이 정갈하게 새겨져 있다. 선생은 항일 독립 운동가였다.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조달하고 만주 등의 독립단과 긴밀히 협력하여 활동했던 인물이다. 망명 한번, 투옥과 고문은 여러 번, 그러나 살아남아 대한의 독립을 보았다. 선생의 옛 집이 나정1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다고 한다. 넓은 주차장을 지나면 또 넓은 오토캠핑장이 있고, 다시 긴 띠처럼 자리한 솔밭 너머에 모래밭이 펼쳐진다. 솔밭에는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가 있다. 가수 조미미가 불렀고 1970년 발표돼 큰 사랑을 받았다.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이 노랫말을 지은 이가 경주 출신의 작사가 정귀문이다. 그는 이곳 나정리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모래가 곱다. 길이 500m, 폭70m의 백사장이다. 2019년 모래유실을 막기 위해 수중 방파제를 설치해 백사장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모래밭 저 끝에 작은 다리가 보인다. 나정고운모래해변과 전촌솔밭해변을 이어주는 인도교다. 근래 전촌해변의 해수욕장 기능이 무너지면서 전촌솔밭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곳 해변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오늘 모래밭은 넓게 비어있고, 파도소리는 낮고 깊고 묵직하다. 해수욕 시즌이 오면 해변도 바다도 얼마나 벅적해질지 상상하기는 쉽다. 미지근한 공기 속을 나른하게 걷다가 옐로우와 레드를 만난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라바'의 주인공들이다. 옐로우가 웃고 있어서 다행이다. 핑크를 잊은 얼굴이어서. 벅적한 시절이 오면 사랑 많이 받을 상이다. 이 생뚱맞은 만남이 제법 유쾌하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직진한다. 배반네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영불로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약 1.5㎞ 직진하다 감포 방향으로 우회전해 간다. 토함산 터널 지나 줄곧 직진하면 나정리 나정고운모래해변, 우회전하면 나정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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