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촬영하던 사진가, 고향 돌아와 재능기부
"내가 잘하는 걸 나누는 게 진짜 봉사"
박준상 이장이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준영기자>
경북 칠곡군 기산면 평복1리 마을회관 담벼락에는 주민들의 얼굴이 걸려 있다. 논밭에서 일하는 모습, 골목길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마을 잔치에서 웃는 모습까지 담겼다.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하루의 장면들이다. 주민들은 사진 앞에 서서 자기 얼굴을 보고 웃고, 옆 사람 얼굴을 보며 지난 이야기를 꺼낸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외부 사진작가가 아니다. 평복1리 박준상 이장이다.
박 이장은 올해 61세다. 평복1리가 고향이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충무로 촬영 현장에서 장비를 나르고 보조 일을 하며 기술을 익혔다. 광고 촬영과 연예인 프로필 촬영 현장을 오가며 사진의 기본부터 배웠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은 결국 본업이 됐다.
이후 사진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한때 안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다양한 일을 경험했지만 사진은 늘 그의 중심에 있었다.
201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뒤 마을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주민들의 신뢰를 얻어 이장이 됐다. 올해로 4년째 마을 일을 맡고 있다.
<사진으로 마을을 기록하는 박준상 이장=생성형 AI>
이장의 일은 행정과 주민 사이를 잇는 것이다. 민원을 챙기고 마을 일을 조율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박 이장은 여기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더했다. 사진이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마을회관 앞 골목길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직접 찍은 주민들의 사진을 골목 담벼락에 걸었다. 처음에는 사진 찍히는 걸 쑥스러워하며 피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이 걸리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주민들은 골목길에 걸린 자신의 사진과 이웃의 사진 앞에 발걸음을 멈췄고, 서로 사진을 보며 웃고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는 활동 범위를 더 넓혔다. 기산면 전체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행사 사진이 아니라 밭일하는 모습, 마을회관에 모여 쉬는 모습, 주민 단체사진, 집 앞 평상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담았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촬영한 사진은 전시회로 이어졌고, 일부는 액자로 만들어 각 가정과 마을회관에 전달됐다.
박 이장은 마을을 돌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주민 집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기록이 되고 가족에게는 추억이 된다"며 "지금 찍어두지 않으면 남지 않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활용한 봉사 활동은 마을 밖으로도 이어졌다. 칠곡군 생활작가 전시회에 참여했고, 약목면 마을가꾸기 사업 현장 기록에도 힘을 보탰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변화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일이다.
박 이장은 봉사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봉사를 큰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며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진짜 봉사"라고 말했다.
이어 "이장은 원래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사진으로 마을의 역사를 남기고 주민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을이 서로 돕고 나누는 분위기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며 "주민 곁에서 이장의 역할도 더 성실하게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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