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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픽] 낯선 들녘에 스며든 스크린 속 그 장소 ‘김면장군 유적지’

2026-05-02 11:05

경북 고령 개진면 옥산리에 숨겨진 임진왜란 무장의 단정한 묘역과 사당
화려한 볼거리 대신 시간의 결을 간직한 풍경으로 색다른 여행 경험 제공

30일 김면장군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곤장을 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30일 김면장군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곤장을 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 들녘 한가운데,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 있다. 이름부터 낯설고도 깊다. '김면장군유적지'. 하지만 요즘 이곳은 조금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바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촬영지다. 스크린 속 장면이 현실로 이어지면서, 한적했던 유적지에는 낯선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김면장군유적지는 화려한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 그 사이를 가르는 농로를 따라 들어가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고요함이야말로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풍경 속에 역사가 스며 있다.


김면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섰던 인물이다. 기록 속에서는 강인한 무장이지만, 이곳에 서면 오히려 인간적인 숨결이 먼저 느껴진다. 묘역과 사당, 그리고 주변 공간은 크지 않지만 단정하게 정비돼 있다. 화려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된 시간의 무게가 또렷하게 전달된다.


최근 이 유적지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연 영화 때문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일부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관람객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화 속 장면과 실제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카메라가 담아낸 장면보다 현실의 공간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에서는 인물과 서사가 중심이지만, 현장에서는 공간 자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특히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누군가는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같은 구도를 찾고, 또 누군가는 그저 한적한 분위기에 이끌려 머문다. 관광지라기보다 '발견된 장소'에 가깝다.


30일 한 가족이 애완견과 함께 김면장군 유적지를 찾고 있다. <석현철 기자>

30일 한 가족이 애완견과 함께 김면장군 유적지를 찾고 있다. <석현철 기자>

이곳의 진짜 매력은 '볼거리'가 아니라 '느낌'에 있다. 유적지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벼와 흙길의 질감, 멀리서 들려오는 농기계 소리까지 하나의 풍경이 된다.


도심의 관광지가 빠르게 소비되는 공간이라면, 김면장군유적지는 머무르며 음미하는 공간이다.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상업시설이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낸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서 더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말 속에는 이 공간이 가진 본질이 담겨 있다.


관광지로서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엿보인다. 영화 촬영지를 계기로 방문객이 늘어난 만큼, 이를 지역 문화와 연결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단순히 '촬영지'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김면 장군의 역사와 지역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는 방향이 중요하다. 설명판 하나, 안내 동선 하나에도 이 공간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고령군 곳곳에는 이미 지산동 고분군과 같은 세계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김면장군유적지는 규모는 작지만, 이런 큰 흐름 속에서 '숨은 이야기 공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이 익숙한 시대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김면장군유적지는 그런 공간이다.


영화 한 편이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사람들을 붙잡는 것은 이곳이 가진 '시간의 결'이다.


주말, 조금은 느리게 걷고 싶다면 이름조차 낯설었던 이 유적지를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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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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