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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인터뷰] 데뷔 50주년을 앞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2026-05-02 12:10
위대한 탄생 최희선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네요. 기타를 처음 잡은 게 다섯 살이었으니, 사실 50년이 아니라 거의 평생을 한 건 아닐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벤처스의 '파이프라인'을 처음 연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뭘 이뤘다'기보다는 운 좋게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요. 예전보다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거든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은 1961년 경북 상주시에서 태어나 1977년 데뷔,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그는 고향 상주시 경천섬에서 올해 네 번째 '경천섬 알리기 프로젝트 록 페스티벌'을 열었으며 매년 7월에 상주시내 북천공원에서 '북천콘서트'를, 12월에 자선콘서트를 열고 있다.


-고향 상주에서 사비를 들여 경천섬 락밴드 페스티벌을 4번째 열고 있는데 힘들지 않나?


"힘들죠. 솔직히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산이 앞서면 이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상주는 제 음악 인생의 뿌리입니다. 평생 음악을 하며 음악으로 받은 것을 어디에 써야 할까 생각하면 제겐 늘 고향이었어요. 상주엔 라이브 밴드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여름밤에 시원한 록 사운드가 울리고 사람들이 같이 즐기는 그 순간, 그걸 보면 힘들다는 생각은 금방 사라집니다. 음악은 결국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완성되는 거니까요. 하다 보니 점점 책임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천섬은 다른 어떤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보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이 풍경이 음악과 만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또 음악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경연의 장을 열어주는 게 제 보람이에요. 제가 음악을 하면서 느낀 건 '무대가 사람을 키운다'는 거예요. 아마추어 친구들이 직접 무대에 서고, 경쟁하고, 부딪히면서 자기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 페스티벌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데뷔는 어떻게 했나?


"정식으로 프로 활동을 시작한 게 1977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요즘처럼 체계가 있는 게 아니었어요. 클럽에서 연주하는 게 전부였죠 말 그대로 현장에서 배우는 시대였습니다. 신중현 선생님 밴드에서 세컨드 기타를 치기도 했고, 그 이후 수많은 가수들의 반주를 맡고 앨범에 음악감독과 편곡으로 참여하며 음악을 익혔죠.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자산입니다."


-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아버지가 기타를 치셨습니다. 상주에서 유일하게 기타가 있는 집이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처음엔 그냥 재밌어서 잡았는데, 놓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택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제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뷔 50년을 돌아봤을 때 기타리스트, 음악인으로서의 자신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나?


"예전엔 '잘 치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리도 세고, 빠르고, 정확하고 완벽해야 했어요. 제 별명이 '면도날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타리스트였으니까요. 이전의 제 연주는 서슬 퍼런 날 선 칼이었다면, 조용필 형님을 만난 뒤 그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목표로 하는 지점을 정확히 찌르는 절제의 미덕을 깨달은 거죠.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서 팀 사운드에 록의 정체성을 심고, 스타디움 공연에 걸맞은 무대 퍼포먼스를 완성해온 과정이 저를 단련시켰죠. 지금은 연주보다 음악 전체를 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걸 아는 게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50년을 한 길로 걸어온 자신에 대한 평가는? 다른 길로 갈 생각은 없었나?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힘든 순간은 많이 있지만 기타를 놓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한 가지 갈증은 있습니다. '나의 음악'을 좀 더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늦게나마 솔로 음반을 낼 때 그게 또 다른 꿈과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뮤직. 뮤지션. 기타. 기타리스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가 생각하는 음악은 다양성이에요. 국악의 한부터 록, 펑키까지 모든 스펙트럼을 담아내는 우주적 언어입니다. 조용필 형님과 위대한 탄생이 한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요. 기타는 단순한 악기가 아닙니다. 소리가 아니라 '상황'을 만드는 도구예요. 어떤 때는 대포처럼 터져야 하고 어떤 때는 속삭이듯 들어가야 합니다. 그걸 선택하는 사람이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6개의 줄 위에서 정직하게 정성을 쏟아내는 사람이죠."


-50주년 이후의 계획은?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음악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했던 음악들을 시대별로 다시 연주해보고 싶어요. 한국 대중음악 100년을 기타 연주로 재해석하는 거죠. 당연히 조용필 형님의 곡들도 새롭게 편곡해서 들려드리고 싶고요. 50년간 음악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도 무대 위에서 전 여전히 청년이고 싶습니다."


- 첨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혼자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과정이 음악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위대한 탄생은 합주를 정말 많이 해요. 다른 팀이 열 번 할 걸 세 번만에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백 번을 맞춰요. 겉이 아닌 속까지 채울 수 있는 연습시간이 모여 음악은 완성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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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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