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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도심 속 500년 정자…영주 행정의 기억 품은 영훈정

2026-05-02 11:06
사공정길 학예사가 영훈정을 설명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사공정길 학예사가 영훈정을 설명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경북 영주시의회 청사 옆, 도시의 일상 한복판에 조선 전기 관아 정자 하나가 남아 있다. 사공정길 영주시 문화예술과 주무관(학예사)은 "영훈정은 문중 정자가 아니라 고을 수령이 손님을 맞고 보내기 위해 세운 관청용 정자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며 "영주의 행정과 건축, 지역 문화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문화재"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시 광복로 65. 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3.29㎞ 떨어진 영주시의회 안에 자리한 영훈정은 언뜻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다. 영주시청 정문에서 시청로를 따라가다 영주우체국과 구성오거리를 지나 번영로로 접어들면 영주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오른쪽 뒤편 영주시의회 사무실 서쪽에 영훈정이 남향으로 앉아 있다. 번잡한 도심과 공공청사 사이에 놓였지만, 정자 앞에 서면 이 건물이 품은 시간의 결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사공 주무관은 영훈정을 설명하며 먼저 "이 정자는 조선 후기 흔히 볼 수 있는 문중 중심의 누정과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보통 지방의 정자는 특정 가문이 학문과 교유를 위해 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영훈정은 군수 정종소가 1468년 건립한 관청용 정자다. 처음 이름은 '난장자'였다고 전한다. 그는 "고을을 오가는 인사들을 맞이하고 쉬게 하는 기능을 했다는 점에서 지방 행정의 공간이자 접객의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영훈정은 세워진 뒤 한때 자취를 잃었다. 이후 1644년 군수 신속이 농한기를 이용해 선비 박문범, 송영달, 권창업, 이문옥 등에게 감독을 맡겨 다시 중건했다. 1910년에는 지금 자리로 옮겨 세웠는데, 다만 이전 원래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공 주무관은 "이 건물은 한 번 세워지고 끝난 문화재가 아니라, 사라질 뻔한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리를 옮겨 오늘까지 이어온 살아 있는 지역사 자료"라고 했다.


영훈정은 2002년 2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4호로 지정됐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 폐지에 따라 현재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돼 있다. 사공 주무관은 "지정 명칭이나 제도는 바뀌었어도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지금은 시민 생활권 안에서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사공정길 학예사가 영주시의회 옆에 위치한 영훈정의 역사와 구조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사공정길 학예사가 영주시의회 옆에 위치한 영훈정의 역사와 구조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건물의 짜임은 간결하지만 품격이 있다. 영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을 얹었다. 사방을 터 마루를 두고, 바닥에는 우물청판을 깔았다. 마루 끝에는 난간을 둘렀고, 오른쪽 뒤 칸에는 위층으로 오르는 가파른 사다리 계단을 놓았다. 아래층에는 둥근기둥 12개를 3열로 배치했고, 위층에는 가운데 기둥 없이 둥근기둥 10개를 세워 누각의 개방감을 살렸다. 사공 주무관은 "문중 정자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방처럼 구획해 사용했다는 기록도 전한다"며 "관청용 건물의 실용성과 누정 건축의 형식미가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의 흔적도 또렷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관청 사무실로 쓰이면서 칸막이를 댄 자국이 남았고, 일부는 퇴락했다. 그럼에도 전체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사공 주무관은 "가구의 결구가 다소 이완된 부분이 있지만, 당시 건축양식을 이해하고 수법을 연구하는 데 충분히 중요한 자료"라며 "영훈정은 완벽하게 복원된 유물이 아니라, 시대 변화의 흔적까지 품고 있는 실물 자료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자 안에는 이 건물의 격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도 남아 있다. 영훈정 편액은 퇴계 이황의 글씨로 전해지며, 내부에는 '쌍청당', '범향정' 등의 현판과 정종소의 '향서당기'가 걸려 있다. 건립과 중건의 내력은 김응조가 쓴 '영훈정 중건기'에 비교적 자세히 전한다. 여기에는 영훈정이 한때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과정, 그리고 이를 단순히 운수로 돌리지 않고 사람의 뜻과 책임으로 읽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사공 주무관은 "영훈정 중건기는 단지 건물 하나를 고쳐 세운 기록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까지 담은 글"이라고 했다.


영훈정은 화려한 명승지처럼 압도적인 첫인상을 주는 문화재는 아니다. 대신 관아의 기억, 지방 행정의 자취, 누정 건축의 형식, 그리고 지역 사회의 보존 의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사공정길 주무관은 "도심 속에 이렇게 오래된 관청용 정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주의 역사적 층위를 보여준다"며 "영훈정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영주라는 도시가 무엇을 기억해 왔는지를 말해주는 장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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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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