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오늘 몇 번이나 웃었는가. 웃어야 할 것 같아서 웃은 것 말고, 진짜로.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청소년 시절의 내가 얼마나 자주 표정을 골라 입고 있었는지를. 이 자리에서는 웃어야지, 이 상황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지 — 날마다 옷을 고르듯 감정도 하나씩 꺼내 입었다. 내가 진짜 괜찮은 건지,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스스로도 분간이 안 될 만큼.
우리는 늘 완벽하게 포장된 타인의 하루를 보며 나의 오늘을 부끄러워하곤 한다.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나만 여전히 서툰 어른아이 같아서 마음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채 숨 가쁜 하루를 버텨낸다.
독일에서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던 때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빈 종이 앞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기 싫으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아이가 말했다.
"그리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열심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어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 채 막막한 빈 종이를 마주한 채 그런 시간 안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무 서둘러 마침표를 찍거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날에는 내가 멈춘 것이 아니라, 단지 나만의 속도로 숨을 고르는 중일 뿐이니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들켜도 된다. 누군가에게든, 혼자 속삭이는 노트 위에서든. '나 오늘 좀 이상하다'고 적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진다. 감정이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마음에 고여 있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씨앗은 결코 땅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싹이 트기 전, 가장 눈부시고 중요한 일들은 전부 어둡고 고요한 흙 속에서 일어난다.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무겁기만 한 그 시간은 — 사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키워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운 감각을 안고, 처음으로 세상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가고 있다. 처음이 서툰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 처음인데 능숙한 사람은 없다.
오늘 하루가 어땠든, 당신은 그 수많은 '처음'들을 또 하나 무사히 통과해 왔다. 오늘 밤에는 숨이 가빴다면 길게 내쉬고, 눈물이 고였다면 흘려보내도 좋다. 당신이 보낸 그 서툴고 무거웠던 하루의 조각들이 모여, 머지않은 어느 날 눈부신 초록의 잎사귀로 피어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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