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그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준엄한 표심은 한국 보수 정치를 향한 마지막 경고장이다. 민심이 돌아선 폐허 위에서 한국의 보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있어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장동혁 리스크'가 지배한 시간이었다. 장동혁 대표 체제는 인적 쇄신과 체질 개선의 기회를 매번 허투루 날렸고, 상식 밖의 공천 잡음을 일으키며 현장의 발목을 잡았다. 헌정 체제 수호라는 보수 정당의 뿌리 깊은 정체성은 온데간데없고, 자극적인 극우 유튜버와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며 민심의 이반을 자초했다. 역설적이게도 지도부의 무능이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안고 치른 선거가 결과적으로는 그 지도부의 리스크를 뿌리 뽑는 인적 청산의 계기가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 공멸의 위기였지만, 합리적 우파로 거듭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에서 참패를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강성 세력에 휘둘려 과거로 퇴행했고, 그 대가는 2020년 총선 참패라는 심판으로 돌아왔다.
지금 보수가 가는 길은 과거와 다른가.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헌정 파괴 사태 앞에서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전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조차 결단하지 못하는 당 대표를 앞세우고 이번 6·3 지방선거를 치렀다.
6·3 지방선거의 막이 내리고 이제 정국은 곧바로 총선 모드다. 각 정당은 총선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쥔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권력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원투표 80%, 여론조사 20%라는 민심과는 거리가 먼 전당대회 룰에 갇혀 있다. 탄핵 사태를 거치며 당원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쏠린 상황에서, 소장파 의원들은 차기 총선 공천 학살을 두려워하며 지도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므로 6·3 지방선거 책임의 출발은 장동혁 대표를 위시한 현 지도부의 전격적인 사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판 자체를 새로 짜겠다는 단호한 인적 쇄신의 신호탄이 필요하다. '윤 어게인'의 집단 가입으로 국민의힘 책임 당원이 100만을 넘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들을 믿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정신승리를 외치면서 당명 개명 같은 간판 갈이로 현재의 위기를 적당히 봉합한 채 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선다면 더 이상 보수의 미래는 없다. 보수 정치의 위기를 자초하고도 선거철만 되면 텃밭의 안락함에 기대어 일신의 권력만을 유지해 온 중진, TK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통해 스스로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에는 민주당은 본인들이 여전히 운동권인 줄 알고, 보수당은 자기들이 여전히 주류인 줄 안다는 뼈아픈 농담이 있다. '우리가 여전히 사회의 주류'라는 오만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수의 자리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경북의 민심 이반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TK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에 실망해, 평생 보수를 지지해 온 이들 중 상당수가 야당에 표를 던지는 '전략적 이탈'을 감행했다. 무조건 찍어주던 맹목적인 지지의 시대는 끝났다. 지역민들은 이미 다음 총선을 벼르고 있으며 반성과 혁신없는, 변하지 않는 기득권은 언제든 도태될 수 있음을 이번 투표로 증명해 보였다.
이은경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이은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