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대구, ‘생성의 장’ 7월11일까지…이강소 최신 회화·조각 작품 선봬
50년 넘게 이어온 실험정신으로 형상과 지각의 경계 탐구
지난달 28일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만난 이강소 작가는 "50년 넘게 무수한 실험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바탕에는 비판 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힘찬 붓질로 그어진 선들이 자연스레 얽히고 덧그려지며 장엄한 산맥처럼 펼쳐진다. 검은 선 위로 흰 선들이 자유롭게 지나가면서 구름 속에 잠긴 듯한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안엔 무지개가 피어 있다. 화면 아래 덩그러니 놓인 나룻배 한 척은 관람객을 금세 깊은 산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다.
넓은 붓으로 그은 선인지, 네모난 면인지 알 수 없는 선과 면이 또 다른 화면을 채운다. 붉은빛과 노란빛, 파란빛은 어떤 색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지는 태양이 되기도 하고, 노을이나 물결이 되기도 한다. 그 아래 놓인 나룻배 한 척은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는 태양 속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듯하다.
리안갤러리 대구가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이강소 작가의 개인전 '생성의 장(場): A Field of Becoming'을 오는 7월11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이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해온 '생성'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다.
이 작가의 작업은 형상을 만들어내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상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라는 조건과 상황을 묻는다. 작품을 작가의 의지로 완결되는 결과물이 아닌, 생성의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적 조형 개념인 형식적 완결성과 작가 중심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실험정신에서 비롯된다.
이강소 작.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지난 5월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작가는 "과거 근대적인, 자기 중심적인, 자기 존재론적인 사고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생성의 구조를 'Becoming'이라는 개념으로 사유한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지각의 흐름에 가깝다. 이에 작품은 단일한 실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위치와 시간,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드러난다.
이 작가는 "우리는 현실에서 같은 꽃을 본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각기 다르게 보는 것이다. 현실이란 건 확실한 게 아니라 상당히 환상적이고, 감각적이고,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 그림을 볼 때 관객마다 자기 경험에 따라서 보게 된다. 그렇기에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관계마다 다르게 읽히는 그림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강소 작.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이번 전시에선 이 작가의 최신 회화와 더불어 오랜 시간 이어온 조각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이 작가는 "느닷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행위들이 나왔을 때 신선함을 느낀다. 하던 것을 몇 번 반복하면 고정된 개념이 생기고, 고정된 추상회화가 된다"며 "예상하지 못했던 행위로부터 새로운 것이 항상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하다. 그래서 실패작이 많다. 조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작품 속에는 배와 같은 특정 형상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너무 설정해서 그리면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는 게 되니까 몇 개의 이미지만 가지고 상황에 맞춰 사용한다. 지나치게 묘사하면 주관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간소하고 간단하게 한다"면서 "화면 속 색들도 하늘이 되고, 물이 되고, 구름같이 보인다. 순간순간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 그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작가가 50년 넘게 무수한 실험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바탕에는 비판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비판하고, 분석하면서 과연 이게 옳았던 것인가를 생각한다"며 "과학이나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과거와 달라졌는데, 과거의 형식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 문명에 맞지 않는다. 나를 끊임없이 변형시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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