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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제1회 월드컵 경기대회

2026-06-08 06:00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제1회 월드컵 경기'는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그땐 그야말로 호랑이가 내려와 담배를 피웠다. 참가국은 13개국. 이집트는 배를 놓쳐 참가 못했고 영국, 독일, 덴마크 등은 FIFA와 틀어져 불참했다. 당시 참가선수들은 대부분 직장이 있었다. 이들은 몇 주간 결근하면 손해가 커서 FIFA는 이것을 보상해 줘야 한다고 하였다. 영국 등은 스포츠의 아마추어리즘 정신에 위배된다고 반대, 결국 참가를 거부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주최국이 되려다 실패하고 원정의 부담도 커서 불참했다. FIFA 회장이 참가해 달라고 빌고 돌아다녔다. 제노바를 출발한 배는 루마니아 선수, FIFA 회장, 심판 3명을 태우고 가다가 프랑스 팀도 승선시켜 15일만에 우루과이에 도착하였다.


경기는 폭력의 도가니였다.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작심하고 미국을 '까기' 시작하였다. 한 선수의 다리부터 분질러놓더니 미국 팀 닥터의 스멜링 솔트를 빼앗아 미국선수 눈에 뿌려 얼마간 눈을 못 뜨게 했다. 거기다가 입까지 찢어놓았다. 한 선수는 배를 다쳐 입원하는가 하면 또 한 선수는 이를 다 갈아 뭉개놓았다. 심판은 뭣 했을까? 심판은 넥타이를 매고 블레이저 재킷을 입고 골프 바지 같은 바지를 입었다. 그 '신사'들은 비신사적 행동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승전에 앞서 또 싸움이 붙었다. 이때는 공인구가 없던 터라 서로 자기 나라 공을 써야 한다고 우겨 결국 전반부는 아르헨티나 공, 후반부는 우루과이 공을 써야 했다. 우루과이가 우승하여 선수들에게 상으로 집 한 채씩 주자 아르헨티나는 분하여 우루과이 영사관에 몰려가 난동을 부렸고 우루과이 국기를 흔들던 여성에게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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