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986년 6월12일 선우휘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간지 주필 등을 지낸 이력이 있어 언론인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역사에는 소설가로 더 뚜렷이 남을 것이다. 기원전 400년 무렵 인물 히포크라테스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에 따르면, 소설은 예술이고 언론은 인생이다.
선우휘의 소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불꽃'이다. 주인공 고현의 아버지는 3·1운동 때 순국한다. 아들을 잃은 고현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더욱 애착을 가진다. 지주로서 경제적 여유가 있던 고 노인은 손자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다.
고현은 대동아전쟁에 참전했다가 탈영한다. 식민지로 전락해 살아가는 조선 백성이 제국주의 일본을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고현은 일제의 침략 전쟁의 논리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고현은 팔로군 영향권에 있는 중국인 마을로 들어간다.
고현은 조선인 공산주의 단체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내 그곳을 벗어난다. 그들이 입으로만 계급 해방과 평등을 부르짖을 뿐 실제로는 장차 획득할 현실적 이익을 노려 혁명을 도모 중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해방 후 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고현은 공금을 착복한 교장과 좌익 교사들 사이의 갈등을 목격한다. 교사들은 교장을 내쫓으려 하고, 교장은 교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경찰에 넘긴다. 그 과정에서 고현은 동료 여교사 조 선생의 아버지가 공산당을 거부하고 월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고, 옛날 친구 연호가 나타나 조 선생의 부친을 대상으로 인민재판을 벌인다. 분노한 고현은 내무서원의 총기를 탈취해 대항하다가 쫓겨 동굴로 몸을 감춘다. 그 동굴은 아버지가 부상을 입은 채 은신했다가 숨을 거두었던 곳이다.
연호는 고현의 은신처를 찾아내려고 그의 할아버지를 인질로 삼았다가 끝내 사살한다. 고현은 소총으로 연호를 쏘아 죽이지만 자신도 어깨에 중상을 입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쓰러진다. 고현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 생명의 불꽃을 느낀다.
고현, 그의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 연호는 모두 죽는다. 그처럼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인생은 그렇게 짧다. 그러므로 고현처럼 한 번은 생명의 불꽃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고현은 너무 늦었다. 독자는 그 깨달음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이 소설 독서의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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