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송승환 인터뷰
20일까지 북구 청문당서 아카이브 전시
배우·기획자·총감독 등 여러 분야서 활약
정체성은 배우지만 제작자 매력도 충분해
슬럼프 없이 이겨낸 원동력, ‘좋아서 한 일’
일흔 넘는 나이에도 창작 2인극 등 도전도
“후배 예술가들 자신 보며 용기·위안 얻길”
배우 송승환에게 삶은 거대한 '연극'과 같다. 배우·기획자·총감독 등 무대 안팎에서 다양한 '역할'을 넘나든 그가 오는 20일까지 북구 청문당에서 아카이브 사진전 '나는 배우다, 송승환'을 연다. 정수민기자 jsmean@yeongnam.com
"연극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예술이에요. 홀로 무대를 채우는 모노 드라마조차도 누군가는 조명을 켜주고, 의상을 입혀주고, 세트를 만들어줘야 하죠. 지난 60년간 많은 사람에게 큰 신세를 지고 살아왔구나 싶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인생 70년 중 60년을 배우로 살아왔다. 그 주인공인 배우 송승환의 삶은 거대한 '연극'과 같다. 배우부터 문화기획자, 제작사 대표, 총감독에 이르기까지 무대 안팎에서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었다. 삶이 연극이라면 수많은 '배역'을 맡아 온 셈이다.
◆ 연기·제작 아우른 원동력은 '재미'
배우 송승환은 사진전 타이틀로 '배우'를 내건 이유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이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연극 '더드레서'에서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 송승환. <행복북구문화재단 제공>
"나의 정체성은 결국 '배우'예요.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연기를 할 때 에너지가 충만해지고 가장 순수해져요."
이번 아카이브 전시 타이틀로 '배우'를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작이나 기획은 철저한 비즈니스죠. 적자를 내면 안 되니 배우 개런티를 깎는 이율배반적인 일도 해야 하고, 티켓 한 장을 더 팔기 위해 힘써야 하죠. 하지만 연기할 때는 오직 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남은 인생도 배우로서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의 연기 인생은 10살의 나이에 KBS 라디오 아역 성우로 데뷔하며 시작됐다. 이후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드라마 70여 편과 영화 20여 편, 연극 30여 편을 아우르며 오랜 시간 대중들과 만나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총감독이었던 송승환이 인면조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행복북구문화재단 제공>
연기가 타고난 재능으로 시작된 길이었다면, 제작자의 길은 21살부터였다. '극단76'에서 활동하던 시절, 단원 중 방송 활동으로 수입이 가장 많았던 그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기 위해 제작에 뛰어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렇듯 그는 제작자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느꼈다.
"제작자는 축구 감독과 같아요.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누구보다 기뻐하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했던 '난타' 첫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칠 때, 객석 맨 뒤에 있던 제가 무대 위 배우들보다 10배는 더 기뻤을 거예요."
그의 인생에서 일은 끊이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MC, 라디오 DJ, 연극, 공연 제작까지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왔다. "배우도 평생 인기 스타로만 살 수는 없거든요. 위기가 올 때마다 다른 분야에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여러 일을 슬럼프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좋아서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자리 역시 부담감이 막대했지만, 오직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 하나로 임했다. "재미없는 일에 어떻게 최선을 다해요? 내가 즐거워야 온 열정을 쏟아낼 수 있죠."
◆ 2인극 등 참여…"배우로 활약할 것"
지난 10일 북구 청문당에서 배우 송승환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을 기록한 사진들을 두고 "자신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각 6개씩 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수민기자 jsmean@yeongnam.com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발걸음은 대구와도 깊이 닿아 있다. 배우로서도, 제작사 대표로서도 대구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그는 대구를 두고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이자 자주 찾게 되는 곳"이라며 "다른 도시에 비해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지역"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부산의 성장세가 매섭다 하더라도 대구가 이미 오랜 세월 탄탄하게 다져온 관객층의 깊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번 사진전이 열리는 청문당은 경북대 북문 대학로에 자리한 만큼, 주로 지역 청년들의 예술 거점이 돼 왔다. 이런 공간에서 전시를 열게 된 소감을 묻자, 그는 "나도 청년이었던 때가 있었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이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지역 청년 예술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건넸다.
"다른 어떤 일보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힘든 일이죠. 경제적으로도요. 이번 사진전을 보면 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가 쭉 이어져 있잖아요. 후배들이 아역부터 시작해서 일흔이 되도록 무대를 지키고 있는 저를 보면서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으면 해낼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와 위안을 가슴에 품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인터뷰 전날까지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총감독으로서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스케줄은 '무대 위'다. 올 연말에는 연극 '더 드레서' 지방 공연이 예정돼 있고, 내년 2월부터는 세종 S씨어터에서 창작 2인극 '철수와 영희' 초연을 선보인다. 또한 내년 10월이면 30주년을 맞이하는 '난타' 역시 밴드와의 라이브 공연, 류승룡·김원해 등 '난타' 출신 스타 배우들과의 특별 합동 공연 등 다양한 계획을 구상 중이다.
"시력이 나빠지니까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고, 자꾸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아주 안 하겠다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는 배우로서 충실히 할 생각입니다."
정수민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