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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우주를 품은 21세기 서예가의 집…이정 개인전 ‘宀宀: 내가 읽은 집’

2026-06-14 14:09

오는 7월25일까지 갤러리CNK서 열려
문자·한글·먹으로 지은 현대의 한옥
서예의 문자성을 입체·설치 작업으로 확장

지난 11일 갤러리CNK에서 만난 이정 작가가 성산별곡을 새긴 한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지난 11일 갤러리CNK에서 만난 이정 작가가 성산별곡을 새긴 한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옛 문인들이 21세기에 살고 있다면 그들의 방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적 건물인 전시장이 21세기 한옥으로 변했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상형문자 이미지로 디딤돌을 상징하는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람이 방이나 마루를 오르내릴 때 발로 딛는 디딤돌을 지나 1.5층 스킵플로어에는 한지와 먹 작업으로 현판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가 설치돼 있다.


외부공간과 연결되는 2층에는 한옥의 대들보, 기둥, 툇마루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 놓였다. 툇마루 작업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가득하고, 대들보와 기둥을 연상시키는 작품에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한글로 새겨져 있다. 외부공간에서 바라보면 툇마루 옆 기둥과 위쪽의 현판이 하나의 한옥 건물처럼 읽힌다. 실내 공간처럼 꾸며진 3층에는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을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새긴 한글 작품과 퍼티로 만든 벼루도 볼 수 있다.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갤러리CNK가 오는 7월25일까지 이정의 개인전 '宀宀: 내가 읽은 집'을 연다.


전시 제목인 '宀宀(면면): 내가 읽은 집'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 '공간의 시학'에 나오는 '방을 쓴다' '집을 읽는다'라는 표현에서 차용됐다. '면면'은 집의 지붕을 뜻하는 한자 부수 '宀'을 겹쳐, 작가가 읽어낸 집과 우주의 구조를 상징한다. 이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우주(宇宙)'라는 거대한 개념을 '집'이라는 가장 작고 낮은 곳으로 불러들인다.


이 작가는 "저 스스로 '21세기의 서예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21세기의 서예가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가 많이 고민했고, 이 모던한 갤러리에서 무엇을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내 집, 내 모든 것, 나의 작은 우주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이번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이 작가의 첫 상업 갤러리 개인전이자, 그의 한글 작업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한글 작업이 너무 가볍게 보이거나 캘리그래피처럼 치부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다"며 "세계 무대에 갔을 때 한국인으로서 나의 언어를 예술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내가 가진 재료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이번 초대전은 제 한글 작업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문자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그는 세상을 읽고 해석해 표현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쓰고 읽는 행위'로 본다. 다른 서예·한국화 작가들이 원론적인 획만 취하고 문자는 버리는 것과 달리 그는 문자 자체를 작업의 중심에 둔다.


그는 "저에게 문자는 작업의 가장 큰 소스이며,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것이 문자며, 가장 전달력이 빠른 그림도 문자라고 생각한다"며 "여러 작가들이 서예에서 획과 선을 가져갔다면, 저는 문자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관람객이 그 문자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림처럼 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이정 작. <갤러리CNK 제공>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일반적인 서예 형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조형적인 성격을 띤다. 한지와 먹, 문자에 기반을 두되 퍼티, 설치, 공간 구성으로 확장됐다.


이 작가는 "전각 작업을 좋아한다. 돌을 대신할 수 있고, 더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재료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퍼티"라며 "11년째 이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색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먹을 사용한다. 먹으로 여섯 달 동안 글씨를 써서 올리면 색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툇마루처럼 보이는 작업은 여섯 달 동안 글씨를 쓰고 파내고, 다섯 가지 먹을 사용해 하늘의 층계를 만든 것"이라며 "죽은 별과 살아 있는 별 등 별의 편차를 먹의 농담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작업은 전통 서예계 안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글씨가 안 되니까 저렇게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초창기엔 그런 누명을 벗기 위해 서예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갔고, 대상이라는 대상은 다 받았다"며 "지금은 열심히 한다는 격려를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그의 한글 작업은 소위 말하는 '잘 쓴 글씨'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큰 기교는 오히려 서툴러 보인다는 '대교약졸'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는 "제 작품의 가장 큰 모티브 중 하나가 원시 도문 문자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문자를 흉내 낸다는 것은 '나도 문자를 정말 알고 싶다'는 갈구라고 생각한다"며 "멋이 없고 못 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가 익힌 모든 기법을 모두 버리고, 어린 아이가 처음 한글을 익힐 때처럼 꾸미지 않게 쓴 것이다. 내가 무엇을 쓰는지, 어떤 행위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쓰는 것이 대교약졸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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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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