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훈
좀 오래된 이야기다. 18대 대통령선거 열기가 한창이었던 2012년 12월 어느 날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때를 놓친 탓에 혼자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가 굉장히 불편한 일을 당한 이야기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랬다. 휴일이라 영업을 하는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탓에 혹시나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시장통 백반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혼자 오는 손님이라고 눈총이나 맞지 않을까 싶어 문을 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식당에 들어섰다. 점심때가 지나 한산해진 식당 안은 대선 소식을 전하는 뉴스전문 채널의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TV와 경상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어조로 무심하게 맞아주는 60대 중반의 여주인이 전부였다.
백반집이라 별도의 주문이 필요 없는 상차림이 식탁 위를 빠르게 차지했다. 그렇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옆 테이블에 앉은 여주인은, 시장기를 해결하려고 막 밥숟가락을 드는 필자를 향해 들으라는 듯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후보는 정말 불쌍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두 분 부모님 모두가 총에 맞아 서거했으니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대통령이 돼야 하는데…"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마침 밥 한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던 탓에 이렇다 할 대꾸도 하지 못한 필자는 여주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다 들어야 했다. 당시의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만했다. 이미 이날 오전 집 현관을 나서기 전에도 식당 여주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논리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언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향한 '측은지심'의 홍보 논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흠모하는 세대를 파고드는 빼어난 홍보전략이었다. 춘궁기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아야 했던 30~50년대 세대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은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위인 중 한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불쌍해서 대통령에 당선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신들은 추운 겨울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찬물에 담겨 있던 옷가지를 꺼내 방망이를 두들기며 빨래를 하던 그 순간, 박근혜 후보는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청와대에서 부족함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자신들의 어려웠던 과거를 앞세우기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향한 존경심과 애틋함에서 투영된 아쉬움을 그들의 딸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승화시켜 버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를 시작으로 충청과 부산·울산·경남 등지를 활보하면서 국민의힘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정치의 본질을 망각하고, 당장 급한 불만 끄고 보겠다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이들이 내민 손을 기다렸다는 듯 덥석 쥐어버린 박 전 대통령. 이들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이해해야 할까. 국민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한 책임은 물론, 역사적 무게에 대한 자각과 성찰도 없이 말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을 되새김질해야하는 오후가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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