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의 부모 세대가 그러하다. 우리에게 그들의 삶은 기적에 가깝다.
시어머님은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가정을 꾸려가던 중 한국전쟁이 터졌다. 고위 공직에 계셨던 아버님이 어머님한테 애들 데리고 친정이 있는 대구로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몇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따라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남편과 맏아들과 딸은 북한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버님 어머님 다 돌아가신 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만남' 행사가 있었다. 나에게는 시숙되시는 맏형을 동생들이 만나자고 초청을 했다. 금강산 숙소에서 동생들은 형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져서 알아볼 수나 있을는지 의문이었다.
걱정할 것 없었다. 형제들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다투어 형을 깊게 끌어안고 숨을 참았다. 남자들이라 눈물은 속으로 삼키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시숙은 아직도 탄광촌에 살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한 번 탄광촌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숙소에서 하룻밤 묵는 동안 동생들이 형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보청기였다. 어떤 게 귀 상태에 맞을지 몰라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걸로 3개나 준비했다. 문제는 가방이었다. 동생은 형에게 가방조차 비싸고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명품 가방에다 보청기 3개를 담아서 건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 요원이 물었다.
"동무, 그건 뭐라요?"
요원은 가방을 가리켰지만 시숙은 내용물로 이해했다.
"보청기라요."
"가방 말이요. 그런 건 물품 보관소에 넘기게 되어 있소. 이리 주시구레."
늙은 시숙이 손주뻘 되는 젊은 요원에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가방을 건넸다. 아무런 불평도 반박도 없었다.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다소곳하기 짝이 없었다. 요원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질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네다."
남한 같으면 '규정'이 그렇게 돼 있다고 할 것을 북한에서는 '질서'라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동생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혹여 형한테 누가 될까 극도로 조심하는 눈치였다.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동생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 요원에게 가방을 건네는 늙은 형의 공손한 모습이 치욕스럽기 짝이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까지 모독해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어쩌면 내가 늘 불평하고 원망해 마지않는 신은 우리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곳곳에 기쁨이나 희망 같은 주문을 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반항아도 기적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주문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주문에 걸려 기적처럼 살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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