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교회 학생회 방이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다. 군 제대를 앞둔 교회 선배가 가벼운 듯 진중하게 말을 던졌다.
"너, 글 제법 쓰던데 그만 고민하고 국문학과로 들어오너라. 거기서 네 재능을 펼쳐 봐라."
선배는 K대 국문학과 졸업생이었고 교수 연구실의 연구생이었다. 고등학생의 눈에는 다방면으로 재능을 갖춘 대단한 사람이었다. 교회 시화전에 걸린 나의 시를 읽고 한 말이었던 것 같다. 어두운 미래를 두려워하며 나를 터널 같은 어둠에서 빼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였다.
경영과나 행정과를 두고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국문과라니! 글을 긁적대는 습관으로 일기나 편지를 쓰고 시를 습작하곤 했다. 글짓기로 상을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글쓰기 재능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국문과라니….
그 한마디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국문학과로 응시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문학청년'이 되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문학청년의 길을 삐딱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술 마시고 인생을 고민하며 같은 과 친구들과 문학에 대해 난상 토론하며 잠들기도 했다. 하지만 말로만 문학을 들먹거렸지 제대로 된 작품하나 쓰지 못했다. 4학년이 되어 졸업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 당시 중단되어 있던 '국문학의 밤'을 부활시키자고 선동하였다. 원고 필경(筆耕·등사판 원지에 철필로 쓰거나 그리는 일)은 내가 직접 긁어서 등사했고, 시 낭독 등 학생회관에서 성대히 공연을 마쳤다. 몇 년간 발행되지 않았던 '국문학의 밤'이라는 학과지도 새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국어 교사로 임용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작 문학청년이 해야 할 글을 읽고 습작하고 창작하는 일은 등한시했다. 지금도 나는 문학을 한다고 하면서 글쓰기를 내면에 축적하고 새로운 표현을 연구하며 문학적 깊이를 더하기에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매일 일상적으로 글을 쓰고 낭송하고 문학작품을 읽고 몸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향으로 푹 빠져 산다. 이런 나는 문학인인가 아니면 문학을 즐기는 사람인가, 문학과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늘 고민한다. 시를 쓰든 산문을 쓰든 컴퓨터엔 어릴 때 책상 서랍에 가득하던 원고 뭉치처럼 내가 쓴 허접한 글들이 넘친다. 하지만 컴퓨터를 마주하고 잡글을 쓸 때만큼은 스스로 최고의 작가가 된 기분이다.
지금 나는 무척이나 행복하다. 전문적 글쟁이는 아니어도 글을 쓰고 글과 뒹굴고 글을 안고 울 수 있어서 사는 맛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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