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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의 좋은 건축, 좋은 도시] 중소도시는 왜 남겨진 공간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가

2026-06-24 13:56
김은광 경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학 박사·건축사

김은광 경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학 박사·건축사

중소도시의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인구 감소를 먼저 떠올린다. 청년은 떠나고, 고령 인구는 늘며, 상권과 공공시설은 힘을 잃는다. 그러나 쇠퇴는 사람 수 감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 줄어든 뒤 남겨진 공간과 자원을 지역의 생활과 산업 안으로 다시 연결하지 못하는 데 있다.


많은 중소도시에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공공시설과 건축물, 유휴부지가 남아 있다. 동시에 지역 산업, 농산물, 역사·관광자원처럼 아직 공간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자원도 존재한다. 그동안의 지역 활성화 사업은 이 둘을 구조적으로 엮기보다 새로운 시설을 조성하거나 일시적 콘텐츠를 붙이는 방식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 시설 조성 이후에도 이용자와 운영 주체, 지속 방식이 불분명하면 그 사업은 활성화가 아니라 미래의 유휴공간을 앞당겨 짓는 일에 가깝다.


따라서 중소도시 활성화는 사업 아이템을 먼저 정하는 방식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먼저 위치와 접근성, 주변 인구, 관광·산업자원, 공공시설과의 관계, 운영 주체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공간은 독립된 토지나 건물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 산업, 관광자원, 운영 주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 진단 없이 사업부터 정하면 실패 가능성은 커진다. 접근성이 약한 곳에 관광시설을 만들거나, 운영 주체가 없는 곳에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역 활성화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상 공간, 이용자, 프로그램, 수익구조, 관리주체, 연계 재원이 함께 맞아야 한다.


그래서 유휴자산은 하나의 처방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회복과 돌봄이 필요한 곳은 웰니스 거점이 되고, 창작 인력이 모일 수 있는 곳은 문화생산 공간이 된다. 농수산물, 제조 기반과 연결되는 곳은 산업관광형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폐교나 공공시설은 교육관광형 장소로 바뀔 수 있다. 일부는 생산과 판매를 시험하는 로컬창업형 거점이 된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모든 사업은 비슷한 체험장이나 전시공간으로 끝난다.


현재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영천의 유휴공간 활용 논의도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현장 사례다. 영천은 포도 주산지를 기반으로 와인산업을 육성해 온 도시이며, 호국 역사자원과 보현산 일대의 천문·관광자원도 함께 지닌 중소도시다. 동시에 고령화된 생활권과 저이용 공공시설, 활용 가능성이 남아 있는 유휴공간도 존재한다. 필자는 이 논리를 영천 사례에 적용해 각 공간을 입지와 접근성, 주변 자원, 예상 이용자, 운영 주체의 관점에서 검토했다. 그 결과 고령 생활권과 가까운 공간은 회복과 돌봄의 거점으로, 포도와 와인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산업관광 거점으로, 호국 역사와 천문 자원에 가까운 공간은 교육관광 공간으로, 지역 농산물과 생산자를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은 로컬창업 실험장으로 각각 다르게 설정할 수 있었다.


이 모델들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으로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회복과 돌봄이 지역 농산물과 만나야 체류의 이유가 생기고, 와인 산업이 교육관광과 결합해야 단순 소비를 넘어 학습 경험이 된다. 문화생산 공간도 로컬창업의 판매 무대가 될 때 지속성을 갖는다. 지속가능한 중소도시는 대형 시설이 아니라 여러 작은 기능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에서 만들어진다.


결국 중소도시 활성화는 새로 짓는 경쟁이 아니다. 남겨진 공간을 지역의 생활, 산업, 관광, 돌봄의 흐름 속에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빈 공간을 읽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중소도시는 개발을 반복할수록 더 많은 빈 공간을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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