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기관 23곳, 현장 체감은 달라
수용곤란 전국 2위…119 재이송도 증가
현장 “의료진 보호 장치 필요” 호소
대구지역 한 병원 앞에 구급차가 세워져 있고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지역 2차 병원들은 야간·휴일 응급진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응급의료 체계 유지에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 한 2차 병원은 응급실 의사를 구하고자 수차례 구인 공고를 냈다. 의료계 인맥을 통해 수소문하고 연봉 조건도 높였지만, 진료를 맡겠다는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병원은 매달 당직표를 짜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대구 2차 병원 응급진료 체계가 의사 구인난으로 흔들리고 있다. 응급실 문은 열려 있지만, 야간과 휴일 진료를 맡을 인력을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단 목소리가 의료 현장에서 나온다.
대구시 보건복지국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대구지역 응급의료기관은 19곳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 2곳, 지역응급의료센터 4곳, 지역응급의료기관 13곳이다. 지역응급의료시설 4곳을 더하면 응급진료 기능을 하는 의료기관은 총 23곳이다.
◆통계보다 심각한 현장 체감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만 놓고 보면 대구가 전국 평균보다 낮은 것은 아니다. KOSIS 국가통계포털 집계상 2024년 대구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5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6.3명이다. 같은 해 전국 평균 5.4명을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통계와 현장 체감 사이 간극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의료기관 수용곤란 고지 건수 현황' 자료에는 지난해 대구의 수용곤란 고지 건수가 2만311건으로 집계됐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최근 5년간 증가 건수는 1만5천727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컸다.
수용곤란은 병상 부족, 해당 진료과 전문의 부재, 중증환자 대응 한계 등을 이유로 병원이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알리는 절차다. 이 건수가 늘었다는 것은 응급환자가 곧바로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응급실 뺑뺑이'도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늘어나는 재이송, 불안한 환자들
119 이송 지표도 나빠졌다. 대구시응급의료지원단 집계에서 119구급대가 환자를 처음 데려간 의료기관에서 수용이 되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옮긴 건수는 2023년 456건에서 2024년 743건으로 늘었다. 증가율은 약 63%다. 응급실 도착까지 1시간을 넘긴 사례도 같은 기간 201건에서 424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실제로 재이송을 경험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응급실에 도착해도 치료가 바로 시작된다는 보장이 없었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말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119구급차를 탄 70대 환자의 보호자 A씨(달서구)는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다시 구급차에 올라 다른 병원으로 이동했다"며 "구급차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상태가 더 나빠질까 봐 가족들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이어 "응급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정작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보호자 입장에서는 어느 병원이 가능한지 알 수 없어 더 불안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호자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아버지가 흉통을 호소해 119를 불렀는데, 처음 문의한 병원에서 심장 관련 진료가 어렵다고 해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며 "응급상황에서는 10분, 20분도 크게 느껴지는데 병원을 찾는 과정 자체가 공포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되면 지역 응급실이 왜 있는지 시민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 했다.
그래프= 기사 기반으로 AI 클로드 제작.
이 같은 경험은 수치로 나타나는 재이송 건수 이상의 불안을 낳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응급실 도착 여부보다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의료계가 2차 병원 응급진료 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증·중등증 환자를 지역 병원이 제때 받아주지 못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과밀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무너지는 2차 병원 응급실
지역 의료계는 대구 응급의료의 약한 고리로 2차 병원을 꼽는다. 2차 병원은 경증·중등증 환자를 먼저 진료하고, 중증환자는 신속하게 상급종합병원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기능이 약해지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고, 정작 중증환자를 받을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응급실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배경에는 높은 근무 강도와 책임 부담이 있다. 야간과 휴일에는 제한된 인력으로 환자 상태를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응급처치 이후 배후진료가 이어지지 않으면 법적·행정적 책임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상급종합병원보다 인력과 시설이 제한적인 2차 병원일수록 부담은 더 커진다.
응급의학과 의사 한 명만으로 중증환자를 끝까지 치료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다. 뇌출혈 의심 환자는 신경외과, 심근경색 환자는 심장내과, 중증외상 환자는 외과·정형외과·마취과 협진이 필요하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병상도 확보돼야 한다. 이 가운데 한 축이라도 비면 병원은 환자 수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김대영 나사렛종합병원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구인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야간이나 주말에 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으면 의료진이 법적·윤리적 부담을 떠안는 만큼, 제도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정흡 전 경북대병원 교수(예방의학과)는 "2차 병원 응급실 붕괴 문제는 개별 병원의 인력난으로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대구시, 상급종합병원이 각각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분명히 따져야 한다"며 "정부는 응급의료 전달체계와 보상 구조를 손봐야 하고, 대구시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의 인력·배후진료 실태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역시 중증환자 최종 치료기관으로서 2차 병원과의 연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책임 소재를 명확히 추궁하고, 현장에서 작동하는 제도 개선안을 끌어내지 못하면 응급실 문은 열려 있어도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도 지역 응급의료 체계 개선을 민선 9기 공공의료 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추 당선인은 지난 24일 영남대병원에서 AI·바이오 메디시티대구협의회와 만나 "응급실 뺑뺑이 등 구조적 문제를 고치고 시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대구시와 지역 의료계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며 "필수 응급의료 협력체계 구축을 민선 9기 공공의료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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