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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대지의 노래가 멈추기 전에

2026-07-09 06:00
지중배 지휘자

지중배 지휘자

지난달 전 세계의 뉴스에서는 유럽의 폭염, 남미의 한파 등 지구촌 곳곳에서 평소와 다른 이상기후에 관한 소식들이 넘쳐났었다. 독일 역시 기이한 날씨 변화로 혹독한 몸살을 앓았다. 독일에서 산 지 20년째를 코앞에 두었음에도 매일 40도가 훌쩍 넘는 기나긴 폭염은 처음 겪는 지독한 경험이었다. 평생 이곳을 지켜온 현지인들조차 겪어보지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고, 도시의 인프라와 시민들의 일상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뉴스 화면을 채운 재해 소식을 보며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닌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의 위협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사실 지구의 수만 년 역사 속에서 기후변화는 늘 존재했다. 지구는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해왔다. 격렬한 빙하기가 찾아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간빙기가 이어졌고, 그 거대한 대자연의 순환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태어나고 사라졌다. 지질학적 거시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더위 역시 지구가 겪어온 변화의 연장선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거의 변화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무엇이 다를까. 과거 자연이 주도했던 온난화는 지구의 온도를 고작 1도 올리는 데 무려 수천 년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대자연이 스스로 호흡하고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개입되면서 지구는 불과 100여 년 만에 1도 이상 뜨거워졌다. 자연의 위대한 시곗바늘을 인간이 난폭하게 그 속도를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자연을 공존과 경외의 대상이 아닌 착취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오판해왔다.


'사랑하는 대지는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나고, 푸른 지평선은 영원히 빛나리라. 영원히…' 계속 귀에 맴도는 가사이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생의 마지막에 가혹한 운명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대지의 노래'를 썼다. 이 곡은 자연을 찬미하는 노래가 아니다. 인간 내면의 지독한 고독과 유한한 소멸을 노래한다. 마지막 곡 '고별'에 나오는 위 가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사라질지언정, 기어이 다시 봄을 피워내고야 마는 대자연의 순환만큼은 영원할 것이라는, 그가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안이자 믿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 앞에서 말러가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영원'이라는 위안은 빛을 바래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급격한 변화들이 지구가 스스로 숨을 쉬고 계절을 피워내던 오랜 순환의 고리를 위태롭게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어줄 것이라는 우리의 당연한 믿음은 이제 어쩌면 거대한 교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구호나 거대 담론이 아닐지도 모른다. 먼저, 우리가 무심히 당연하게 누려왔던 대자연의 호흡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서는 일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그리고 마친 후 잠시 머무는 정적의 시간처럼, 우리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주변을 둘러볼 수는 없을까. 앞으로 우리는 이 낯설고 가혹해진 기후의 변화를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할까. 대지의 노래가 영원히 멈추기 전에, 자연이라는 이 위대한 하모니 속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겸손함은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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